저먼 지니어스
-유럽의 세번째 르네상스,
두번째 과학혁명, 그리고 20세기
피터 왓슨 지음, 박병화 옮김
글항아리·5만4000원 나치가 독일을 통치한 기간은 12년이었지만, 그 기간은 외부에서 독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2004년 영국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서 10~16살 소년들에게 독일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물었더니, 78%가 ‘제2차 세계대전’, 50%가 ‘히틀러’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피터 왓슨은 “20세기는 독일의 시대여야 했다”는 미국 학자 노먼 캔터의 말을 되새긴다. 독일의 근대 지성사·문화사가 인류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데도, 나치 시대에 가려져 그 진가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2010년 펴낸 노작 <저먼 지니어스>는 바로크 시대의 천재 음악가 바흐로부터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까지 250년 동안 독일에서 있었던 천재들의 활동, 또는 지식의 역사를 추적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시장경쟁과 자연도태를 제외하면, 현대사상은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막스 플랑크,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베버,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형성됐다”고 주장하며, 이 기간 동안 현대사상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독일 천재’들의 활약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분량은 전체 책을 1400쪽으로 만들 정도로 방대하고, 그들의 업적은 “세번째 르네상스와 두번째 과학혁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정도로 지대했다. 지은이는 독일의 현대 문화가 발현했던 데에는 교육받은 중간계층, 내향성, 교양, 연구·철학박사·학문·현대성, 구원의 공동체에 대한 동경 등 서로 맞물린 뚜렷한 다섯가지 요인들이 있었다고 짚는다. 프로이센은 1820년대부터 어린이 공교육을 의무화했고, 19세기 전반 영국에 4개밖에 없는 대학이 독일에는 50개 넘게 있었다. 독일 특유의 내향적 성향은 신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위협받았을 때 관념론이나 사변철학 등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정신 활동을 자극했고, 이는 ‘교육받은 중간계층’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독일 사상가들 대부분이 목사의 아들이거나 손자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칸트가 유기적 실체로써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집착했던 것처럼, ‘구원의 공동체에 대한 동경’은 이들이 보인 공통된 특징이었다. 지은이는 “신이 떠난 자리에서 공동체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토대로서 탐험을 위해 남겨진 아마 유일한 윤리적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과학과 자본주의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이들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교양계급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다. 지은이는 이에 따라 회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이 사라진 사회문화적 토양이 결국 나치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동시에 70여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변화를 겪은 독일에서 그러한 ‘교양계급의 배신’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란 점을 강조하며, 과학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 정신의 유산을 제대로 끌어안자고 제안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유럽의 세번째 르네상스,
두번째 과학혁명, 그리고 20세기
피터 왓슨 지음, 박병화 옮김
글항아리·5만4000원 나치가 독일을 통치한 기간은 12년이었지만, 그 기간은 외부에서 독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2004년 영국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서 10~16살 소년들에게 독일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물었더니, 78%가 ‘제2차 세계대전’, 50%가 ‘히틀러’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피터 왓슨은 “20세기는 독일의 시대여야 했다”는 미국 학자 노먼 캔터의 말을 되새긴다. 독일의 근대 지성사·문화사가 인류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데도, 나치 시대에 가려져 그 진가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2010년 펴낸 노작 <저먼 지니어스>는 바로크 시대의 천재 음악가 바흐로부터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까지 250년 동안 독일에서 있었던 천재들의 활동, 또는 지식의 역사를 추적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시장경쟁과 자연도태를 제외하면, 현대사상은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니체, 막스 플랑크,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베버,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형성됐다”고 주장하며, 이 기간 동안 현대사상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독일 천재’들의 활약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그 분량은 전체 책을 1400쪽으로 만들 정도로 방대하고, 그들의 업적은 “세번째 르네상스와 두번째 과학혁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정도로 지대했다. 지은이는 독일의 현대 문화가 발현했던 데에는 교육받은 중간계층, 내향성, 교양, 연구·철학박사·학문·현대성, 구원의 공동체에 대한 동경 등 서로 맞물린 뚜렷한 다섯가지 요인들이 있었다고 짚는다. 프로이센은 1820년대부터 어린이 공교육을 의무화했고, 19세기 전반 영국에 4개밖에 없는 대학이 독일에는 50개 넘게 있었다. 독일 특유의 내향적 성향은 신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위협받았을 때 관념론이나 사변철학 등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는 정신 활동을 자극했고, 이는 ‘교육받은 중간계층’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독일 사상가들 대부분이 목사의 아들이거나 손자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칸트가 유기적 실체로써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집착했던 것처럼, ‘구원의 공동체에 대한 동경’은 이들이 보인 공통된 특징이었다. 지은이는 “신이 떠난 자리에서 공동체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토대로서 탐험을 위해 남겨진 아마 유일한 윤리적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과학과 자본주의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이들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교양계급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다. 지은이는 이에 따라 회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이 사라진 사회문화적 토양이 결국 나치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동시에 70여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변화를 겪은 독일에서 그러한 ‘교양계급의 배신’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란 점을 강조하며, 과학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 정신의 유산을 제대로 끌어안자고 제안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