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변안열 평전
이성무 지음/글항아리·2만원 변안열(1334~1390)은 고려말 무신이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변안열은 ‘불굴가’로 거절했고, 둘 다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변안열은 <고려사> 가운데 ‘간신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정몽주가 충신으로 기려지는 것과 견줘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역사 서술이다. 여기에 의구심을 가진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은 <변안열 평전>을 통해 여말선초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변안열이 어떤 궤적을 밟았는지 추적해간다. 중국 심양에서 태어난 변안열은 원나라에 있던 고려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해 고려로 돌아오게 되자, 함께 고려로 왔다. 탁월한 무장이었던 그는 왜구를 퇴치한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와 맞먹는 전과를 올리는 등의 공적을 세우며 ‘명장’으로 평가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성계와 ‘친명파’로서 뜻을 함께하며 위화도 회군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그 뒤의 노선은 이성계파와 엇갈렸다. 우왕을 끌어내린 이성계 일파는 다른 왕족 가운데에서 허수아비 왕을 세우려 했으나, 변안열은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추대했다. 이성계 일파가 주동했던 토지 개혁에서도 입장이 엇갈렸고, 우왕 복립을 시도한 ‘김저의 난’에도 휘말렸다. 게다가 그는 이성계와 맞먹는 군사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이성계파가 가장 철저한 반대자였던 변안열을 재판도 없이 죽이고, ‘간신전’에 편입시켜 매장시킨 것”이라고 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이성무 지음/글항아리·2만원 변안열(1334~1390)은 고려말 무신이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변안열은 ‘불굴가’로 거절했고, 둘 다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변안열은 <고려사> 가운데 ‘간신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정몽주가 충신으로 기려지는 것과 견줘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역사 서술이다. 여기에 의구심을 가진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은 <변안열 평전>을 통해 여말선초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변안열이 어떤 궤적을 밟았는지 추적해간다. 중국 심양에서 태어난 변안열은 원나라에 있던 고려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해 고려로 돌아오게 되자, 함께 고려로 왔다. 탁월한 무장이었던 그는 왜구를 퇴치한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와 맞먹는 전과를 올리는 등의 공적을 세우며 ‘명장’으로 평가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성계와 ‘친명파’로서 뜻을 함께하며 위화도 회군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그 뒤의 노선은 이성계파와 엇갈렸다. 우왕을 끌어내린 이성계 일파는 다른 왕족 가운데에서 허수아비 왕을 세우려 했으나, 변안열은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추대했다. 이성계 일파가 주동했던 토지 개혁에서도 입장이 엇갈렸고, 우왕 복립을 시도한 ‘김저의 난’에도 휘말렸다. 게다가 그는 이성계와 맞먹는 군사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이성계파가 가장 철저한 반대자였던 변안열을 재판도 없이 죽이고, ‘간신전’에 편입시켜 매장시킨 것”이라고 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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