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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스토옙스키의 자유론

등록 2015-12-03 20:51

잠깐독서
자유
석영중 지음/예담·1만7000원

도자기점의 코끼리 같을 때가 있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주위를 망가뜨릴까 두렵고, 내가 나인 게 어색한, 아슬아슬한. 자유가 부족할 때다. 깨지기 쉬운 환경에 대한 불만, 환경을 깨기 쉽게 생긴 자신에 대한 원망은 환경도 자신도 아닌, 자유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도스토옙스키. 시궁창에서도 궁창(穹蒼, 하늘)을 보는 인간성의 문학.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이 바로 자유라고 한다. 굳이 뜻을 가르자면 “시민적(획득한) 자유가 아닌 개인적(내재한) 자유”다. 석영중의 <자유>는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과 <죄와 벌>에서 문학과 삶의 영원한 깃발인 자유를 배우는 책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겐 ‘자유욕’과 ‘자유’가 다르다. 자유욕은 우리에 갇힌 야생을 앓게 하는 그 본능이다. 충족이 가능하다. 자유는 자유욕의 반대다. “본능의 극복과 최고의 도덕적 상태를 향한 지향”. 이건 시도만 가능하다. 죄와 벌의 문제는 자유욕에다 아가리를 벌린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유가 아닌 자유욕을 좇는 인물이다. “빈곤과 열등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감옥의 죄수들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자유욕과 자유가 헷갈리는 존재인데, 도스토옙스키가 정리해준다. 살인(욕). 시도와 함께 기어이 충족은 할 수 있다. 그건 자유욕. 죄와 벌이 작동한다.

자유로 가는 길은 “다르게 봄”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진창도 더럽힐 수 없는 게 감을 수 있는 눈이다. 눈은 시궁창에서도 궁창을 본다. 이때부턴 다르게 보인다. 나 먼저. “나는 나이면 된다는 자족감”이 타인을 인정하게 한다. 그렇게 이어질 연(連), 묶을 결(結). 자아와 세계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는 물을 수 없다. 들어설 뿐 당도할 수 없는 길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자유욕에서 자유로 옮겨 서는 건, 어렵지 않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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