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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종을 찍은 사진에 담긴 비밀

등록 2015-12-10 20:05

이미지와 권력
: 고종의 초상과 이미지의 정치학

권행가 지음/돌베개·2만3000원

조선 시대 왕의 초상인 ‘어진’은 봉인되어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그림이 존재하긴 하지만 공적인 장소에 전시되지 않았고, 그림 자체보다도 그림을 둘러싼 각종 의례와 공간 등이 총체적인 ‘상징’으로 왕의 권위를 나타냈다.

그러다 19세기 말 조선에 서양의 사진술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과거 전통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진이 왕의 신체와 동일시되는 숨겨진 상징물이 아니라, 이제는 왕 또는 국가를 지시하는 시각적인 ‘재현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고종이 있었다.

미술사학자인 권행가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펴낸 <이미지와 권력>은 ‘고종과 사진’이라는 주제로 근대에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 시각문화를 파헤친다. 지은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고종의 초상은 전통과 새로운 매체가 경합을 벌인 실험장 같았다”며, 그 속에 반영된 다양한 주체들의 시각 경험을 되새겨본다.

1872년 고종은 태조와 자신의 어진 제작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친정을 앞두고 왕권 강화를 위한 전통적인 수단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1884년 고종은 서양 최초의 외교 사절이었던 초대 미국 전권공사 루셔스 푸트를 만나, 자신의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화를 전달했다. 앞선 한 달 전 지운영과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고종의 초상 사진을 촬영한 기록으로 볼 때, 푸트에게 전달한 어진은 사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통치자의 사진을 외국 대사에게 전달한 데에는 이전에는 없던 정치적, 외교적 행위로서의 인식이 있었을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다. 왕의 초상이 공적인 재현물로서 새로운 기능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1880년대 초 조선에서 사진술을 처음 도입한 사람으로는 김용원, 지운영, 황철 등이 꼽힌다. 이들은 모두 화원이나 서화가 출신이었다. 이 가운데 김용원과 지운영은 고종이 추진한 개화 정책을 수행했던 개화 관료였고, 지운영은 고종의 사진을 최초로 찍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에 지은이는 “사진술 도입이 고종의 직간접적 관계 속에서 진행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풀이한다.

고종의 초상은 서구의 여러 대중매체 등을 통해 사진뿐 아니라 그림과 삽화 등 다양한 형태로 퍼져나갔다. 고종은 자발적·적극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고,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고 나서는 사진을 통해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은이는 “고종은 일찍부터 사진의 사실적 재현 가능성을 인식했다”고 본다. 고종은 사진과 서양화 등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도 어진의 신성성과 아우라를 지속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을 따랐다고 한다. 정면상을 고집하고 왕을 상징하는 물건을 배치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고종의 초상 만들기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의도와 달리, 서양인들에게 고종의 초상은 박람회나 대중매체를 통해 본 적이 있는 멸망해가는 조선 종족의 초상으로 여겨졌다.

지은이는 “황룡포를 입고 정면을 향하고 있는 고종의 초상에는 대내외에 신성불가침의 전제군주임을 선포하고자 했던 주문자 고종의 의도와, 그것을 비문명국의 종족으로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각이 교차되어 있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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