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지평
-새로운 인권 이론을 위한 밑그림
조효제 지음/후마니타스·2만원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은 얼마나 더 많이 ‘달성’될 수 있을까? 셀 수도 없이 자주 목격되는 법과 현실의 괴리들을 보건대, 법 제정만으로 현실을 바꿔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확해 보인다. 차별금지법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목소리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일각의 현실은 그런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오랫동안 인권 담론을 천착해온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새 책 <인권의 지평>을 통해 인권에 대한 논의를 가장 근본적이고 깊은 차원으로 끌고 간다. “20세기에 형성된 특정한 인권론의 한계를 넘어 인권 이론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려 한다”는 야심찬 학문적 목표를 품었지만, 전문가들이 다룰 법한 어려운 이야기들을 담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추론하는 원형으로서의 인간 존엄성 개념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인권’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 책의 주된 토대를 이룬다. 17세기에 계몽주의와 함께 태동한 인권 개념은 20세기에 이르러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담론이 됐다. 그러나 지은이는 현대 인권 담론이 보여주는 한계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인권의 여러 역할 가운데 ‘도구적 역할’만이 법과 제도의 형태로 계승된 한편, “평등한 개개인을 정치의 궁극적 단위로 격상”시킨 ‘내재적 역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인간 사회의 발전과 민주정치를 위한 핵심적 동력으로 선양하는” ‘표출적 역할’ 등은 강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 등 개별 권리를 보장해주는 데 치중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권을 달성해내는 데 부족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내세우는 새로운 인권 담론의 핵심은 ‘근본 원인’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법·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고문, 인신매매, 테러리즘, 젠더 불평등, 난민, 제노사이드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여전한 이유는 그에 대한 ‘근본 원인’을 탐색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특정한 지역과 계층의 삶을 위협하는 등 사회구조적인 차원, 인권 자체가 강대국의 전쟁 명분이 되는 등 이데올로기적 차원, 힘에 근거를 둔 국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치와 국제법적인 차원, 집단 정체성이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을 부르는 등의 사회심리적인 차원, 국가 자체가 인권침해의 주체가 되는 등의 국가와 민주주의 차원 등 ‘근본 원인’에 대한 탐색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층위에서 요구된다. 지은이는 인권학자 잭 도널리의 ‘권리 보유의 역설’을 인용한다. “권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권리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인권의 근본적인 차원을 개선한다면 인권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필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을 개별적인 권리의 집합으로만 인식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인권을 소극적으로 ‘보장’할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보고, 이를 위해 사회의 거시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새로운 인권 이론을 위한 밑그림
조효제 지음/후마니타스·2만원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우리 사회의 인권은 얼마나 더 많이 ‘달성’될 수 있을까? 셀 수도 없이 자주 목격되는 법과 현실의 괴리들을 보건대, 법 제정만으로 현실을 바꿔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확해 보인다. 차별금지법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목소리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일각의 현실은 그런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오랫동안 인권 담론을 천착해온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새 책 <인권의 지평>을 통해 인권에 대한 논의를 가장 근본적이고 깊은 차원으로 끌고 간다. “20세기에 형성된 특정한 인권론의 한계를 넘어 인권 이론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려 한다”는 야심찬 학문적 목표를 품었지만, 전문가들이 다룰 법한 어려운 이야기들을 담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추론하는 원형으로서의 인간 존엄성 개념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인권’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 책의 주된 토대를 이룬다. 17세기에 계몽주의와 함께 태동한 인권 개념은 20세기에 이르러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담론이 됐다. 그러나 지은이는 현대 인권 담론이 보여주는 한계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인권의 여러 역할 가운데 ‘도구적 역할’만이 법과 제도의 형태로 계승된 한편, “평등한 개개인을 정치의 궁극적 단위로 격상”시킨 ‘내재적 역할’,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인간 사회의 발전과 민주정치를 위한 핵심적 동력으로 선양하는” ‘표출적 역할’ 등은 강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 등 개별 권리를 보장해주는 데 치중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권을 달성해내는 데 부족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내세우는 새로운 인권 담론의 핵심은 ‘근본 원인’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법·제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고문, 인신매매, 테러리즘, 젠더 불평등, 난민, 제노사이드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가 여전한 이유는 그에 대한 ‘근본 원인’을 탐색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특정한 지역과 계층의 삶을 위협하는 등 사회구조적인 차원, 인권 자체가 강대국의 전쟁 명분이 되는 등 이데올로기적 차원, 힘에 근거를 둔 국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국제정치와 국제법적인 차원, 집단 정체성이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을 부르는 등의 사회심리적인 차원, 국가 자체가 인권침해의 주체가 되는 등의 국가와 민주주의 차원 등 ‘근본 원인’에 대한 탐색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층위에서 요구된다. 지은이는 인권학자 잭 도널리의 ‘권리 보유의 역설’을 인용한다. “권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권리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인권의 근본적인 차원을 개선한다면 인권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필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을 개별적인 권리의 집합으로만 인식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인권을 소극적으로 ‘보장’할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보고, 이를 위해 사회의 거시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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