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관경하다
-비단길 풍경과 생태학적 상상
이도원 지음/지오북·2만2000원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아제르바이잔 동부에 위치한 고부스탄은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 유적지로 유명하다. 지난 2011년 7월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도 암각화를 보기 위해 고부스탄을 찾았다. 그런데 정작 이 교수의 눈길을 잡아끈 건, 바위색을 닮은 도마뱀과 유독 재빠르게 움직이는 메뚜기였다. 도마뱀이 은밀한 곳에 숨을 수 있다면 굳이 보호색을 만들 필요가 없다. 보호색을 만들려면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도마뱀의 먹이는 메뚜기 같은 곤충이다. 고부스탄에는 사시사철 메마른 바람이 분다고 한다. 애초 바다였던 땅에는 염도가 높다. 이런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식물은 많지 않다. 초식동물이 먹을 수 있는 먹이가 부족하단 뜻이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은 동물들의 활동량을 증가시킨다. 초식동물은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배를 채울 수 있다. 육식동물 또한 넓게 돌아다녀야 먹잇감을 낚아챌 수 있다. 고부스탄에서는 생명체들이 생태계의 영양소 순환속도(대사회전율)를 높여 열악한 환경에 적응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마치 “자본이 적은 소규모 기업이 빠른 자본회전율로 살아남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관경하다>의 지은이 생태학자 이도원 교수는 2007~2011년 중국 시안~신장위구르 자치구 바얀불락, 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야)·아르메니아 등 코카서스 3개국, 터키, 시리아 다마스쿠스~요르단 암만, 몽골, 중국 창춘~백두산 등 6번의 비단길 여정에 나선다. 책은 여행길에서 마주한 풍경들의 생태적 사연과 이치를 정리한 것이다. 지은이가 생태적 사연을 읽어내는 방식은 ‘관경’(觀景·풍경을 깊숙이 살핀다는 뜻)이다. 도마뱀뿐 아니라 염소 똥, 강물 수질, 길섶, 3개국 언어가 쓰인 간판 등 소소한 풍경을 소재 삼아 생태학의 원리, 문화와 자연의 관계까지 파고드는 이야기가 깊숙하다. 지은이와 함께 찬찬히 ‘관경’하다 보면, 사람이 왜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지 그 이치도 짐작해볼 수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비단길 풍경과 생태학적 상상
이도원 지음/지오북·2만2000원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한 아제르바이잔 동부에 위치한 고부스탄은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 유적지로 유명하다. 지난 2011년 7월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도 암각화를 보기 위해 고부스탄을 찾았다. 그런데 정작 이 교수의 눈길을 잡아끈 건, 바위색을 닮은 도마뱀과 유독 재빠르게 움직이는 메뚜기였다. 도마뱀이 은밀한 곳에 숨을 수 있다면 굳이 보호색을 만들 필요가 없다. 보호색을 만들려면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도마뱀의 먹이는 메뚜기 같은 곤충이다. 고부스탄에는 사시사철 메마른 바람이 분다고 한다. 애초 바다였던 땅에는 염도가 높다. 이런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식물은 많지 않다. 초식동물이 먹을 수 있는 먹이가 부족하단 뜻이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은 동물들의 활동량을 증가시킨다. 초식동물은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배를 채울 수 있다. 육식동물 또한 넓게 돌아다녀야 먹잇감을 낚아챌 수 있다. 고부스탄에서는 생명체들이 생태계의 영양소 순환속도(대사회전율)를 높여 열악한 환경에 적응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마치 “자본이 적은 소규모 기업이 빠른 자본회전율로 살아남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관경하다>의 지은이 생태학자 이도원 교수는 2007~2011년 중국 시안~신장위구르 자치구 바얀불락, 아제르바이잔·조지아(그루지야)·아르메니아 등 코카서스 3개국, 터키, 시리아 다마스쿠스~요르단 암만, 몽골, 중국 창춘~백두산 등 6번의 비단길 여정에 나선다. 책은 여행길에서 마주한 풍경들의 생태적 사연과 이치를 정리한 것이다. 지은이가 생태적 사연을 읽어내는 방식은 ‘관경’(觀景·풍경을 깊숙이 살핀다는 뜻)이다. 도마뱀뿐 아니라 염소 똥, 강물 수질, 길섶, 3개국 언어가 쓰인 간판 등 소소한 풍경을 소재 삼아 생태학의 원리, 문화와 자연의 관계까지 파고드는 이야기가 깊숙하다. 지은이와 함께 찬찬히 ‘관경’하다 보면, 사람이 왜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지 그 이치도 짐작해볼 수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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