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불면증에 피어나는, 꽃의 미래

등록 2016-08-06 15:20

1970년에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손택수는 유년기에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타인의 이야기와 책을 통해 세계를 배우기 전에, 뿌리 뽑힌 어린 몸과 마음으로 세계와 직접 부딪쳐야 했다. 시골과 도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근대 이전과 근대가 격돌하는 충격은 그의 성장기를 지배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이방인으로 떠도는 ‘내국 디아스포라’의 내면은 손택수 개인의 것이면서, 자연과 농경의 세계를 파괴한 대가로 확장하면서 균열해온 근대문명의 것이기도 했다.

손택수의 시는 근대 이전의 충만한 세계에 대한 기억술을 통해 근대의 허점을 상상적으로 보충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손택수는 근대의 균열이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며, 이 균열이야말로 자연과 농경의 세계가 ‘외부’가 아닌 ‘근대의 배제된 내부’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본다. 손택수가 문제 삼는 것은 이 배제의 시스템이며, 그에 길들여진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감각이다. 자연과 농경의 세계를 타자화하면서 근대는 자신이 근대적인 것으로만 채워졌고 채워져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손택수는 이 착각의 유포에 반대한다. 산업사회의 아들인 그의 심신에 새겨져 있는 “저 푸른 느티나무”의 기억과 “어느 먼 곳”의 그리움은, 완강히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의 존재와 필요성을 자인해온 근대세계의 산물이며,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근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면의 균열을 견디고, 실패를 각오해야 하는 형태로서 말이다.

손택수의 시적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이 진술은 사실이지만, 적절한 것은 아니다. 손택수의 시는 시적 전망이 아닌 시적 당위를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시적 당위가 그에게는 시적 전망이다. 근대세계는 근대 이전 및 근대 아닌 것들을 구별하고 배제하는 과정에서 ‘시적인 것’을 적잖이 상실했으며, 시적인 것의 회복은 근대의 뒤틀린 내부를 회복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손택수는 도시 일상의 곳곳에서 그 징후들을 본다. 가령,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은 시적이지 않은 형상으로 ‘시적인 것’을 요청하는바, 이 (비)시적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우리의 현재이며 미래여야 한다. 이 꽃의 미래가 바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