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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민주주의를 대학 교육 중심에 다시 세워라”

등록 2016-08-25 19:24수정 2016-08-25 19:33

미 대학 역사 검토하며 ‘대학 위기’ 진단
전인교육에서 근대적 전문성 중심으로
“배움의 공동체란 원래 이상 회복해야”

왜 대학에 가는가
앤드루 델반코 지음, 이재희 옮김/문학동네·1만5000원

대학의 상업화, 학력자본의 양극화, 비정규직 교수의 급증, 인문학·교양교육의 실종 등 ‘대학의 위기’는 전세계적으로 뜨거워지고 있는 발등의 불이다. 앤드루 델반코 미국 컬럼비아대 영문학 교수가 2012년에 펴낸 <왜 대학에 가는가>는 대학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접근을 시도한 책이다. 미국 대학에 대해 썼지만, 한국의 현실을 대입해도 일맥상통하는 진단과 분석을 읽을 수 있다.

대학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기본 철학은 “배움의 공동체”라는 말로 압축된다. 지은이는 “대학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표현한 것보다 더 나은 문구를 지금껏 접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교육은 타인과의 협력으로 더욱 폭넓은 삶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대학은 그 과정이자 공간이라는 인식이다.

지은이는 오늘날 ‘대학의 위기’에 대해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묻는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 한다. 미국 대학의 기원은 17세기 초 영국국교회에 저항해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온 ‘청교도’(프로테스탄트)들로부터 찾을 수 있다. 종교적 삶과 이를 위한 교육을 중시한 이들은 1636년 영국 대학을 본보기 삼아 뉴잉글랜드 뉴타운(지금의 케임브리지)에 대학을 세웠다. 이 대학은 주요 기증자였던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따 하버드 칼리지가 됐고, 그 뒤로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1693년), 예일 대학교(1701년), 프린스턴 대학교(1896년) 등이 잇따라 생겼다. 이런 초기 대학들은 그 종교적 배경 때문에 “지성은 물론 신체와 영혼을 아우르는 전인교육”을 목표로 삼았고, “천부적으로 평등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진리를 발견한다는 최초의 민주주의적 인식 또한 품고 있었다”.

종교적 삶과 교육을 중시한 청교도들은 1636년 영국 대학을 본보기로 삼아 지금의 케임브리지에 대학을 세웠다. 이 대학은 주요 기증자였던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따 하버드 칼리지가 됐고, 그 뒤로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1693년), 예일 대학교(1701년), 프린스턴 대학교(1896년) 등이 잇따라 생겼다. 사진은 하버드대의 모습.  GAMMA, <한겨레> 자료사진
종교적 삶과 교육을 중시한 청교도들은 1636년 영국 대학을 본보기로 삼아 지금의 케임브리지에 대학을 세웠다. 이 대학은 주요 기증자였던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따 하버드 칼리지가 됐고, 그 뒤로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1693년), 예일 대학교(1701년), 프린스턴 대학교(1896년) 등이 잇따라 생겼다. 사진은 하버드대의 모습. GAMMA, <한겨레> 자료사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신생 대학 설립에 더욱 속도가 붙었는데, 종교적·인종적으로 다양화하는 사회 속에서 애초의 종교적 배경은 갈수록 옅어지는 대신 근대적인 전문성이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1862년 주립대학 설립에 연방 소유의 토지를 제공해주는 ‘모릴법’ 통과에 따라 대학 설립은 더욱 급증했는데, 그 흐름은 기존 교양교육 중심의 ‘칼리지’ 대신 연구 중심의 ‘대학’ 설립으로 바뀌었다. 학생 수와 근대적 지식이 증가하면서 대학이 전문화를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학부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해 이를 미래에 살아 있는 지식으로 활용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둔 ‘칼리지’와 “교수와 대학원생이 이끄는 다양한 연구 활동의 주무대”인 ‘대학’을 구분하는데, 기본적으로 이 두 유형은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공존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과학 발전을 등에 업은 ‘대학’은 ‘칼리지’를 종속시켰고, 능력과 경쟁의 가치가 갈수록 득세하는 가운데 “배움의 공동체로서의 대학이라는 주제는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지은이는 근대의 대학을 “과학이 주도하는 연구업체”라고 비판하는데, 이런 비판은 ‘능력중심주의’(메리토크라시)에 대한 비판과 맥을 나란히 한다. ‘생산력’, ‘성장’과 같은 근대적 신화를 좇게 된 대학이 대학 평가 순위를 최우선 목표로 놓고 서로 경쟁하며 새로운 엘리트 계급을 만들어내는 산실이 되는 동안, 사람들은 “인간은 동등하지 않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지위가 주어져야 한다는 근대사상의 원리”에 동의하게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대학을 다루는 최근의 저술이 따르는 하나의 장르가 있다면, 바로 장송곡일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봤지만, ‘앞으로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똑 떨어지는 대답을 찾기 힘들다는 고백이다. 다만 지은이는 원론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의 복원을 말한다. 과거 초기 대학 설립 때 종교가 그랬듯, 오늘날 ‘민주주의’를 교육의 기준점에 놓으려는 시도만이 대학의 위기를 헤쳐갈 방향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은이는 “캠퍼스 바깥의 시민적 삶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되살아난 것”을 가장 희망적인 지점으로 꼽는다. 이민, 환경, 공중보건, 교육 등의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 대학과 지역 단체의 긴밀한 협력 관계 등이 ‘배움의 공동체’라는 원초적 이상을 현대적으로 되새길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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