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동녘·1만8000원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물으면, 대체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 “사회적 부를 창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등의 대답이 뒤따른다. 그러나 미국 듀크대 여성학 교수인 케이시 윅스는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경제적 필연이라기보다는 사회 관습이자 규범 장치”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윅스는 일(노동)을 열쇠로 삼아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 구조를 새롭게 열어보인다. 일차적으로 지은이는 산업화 시대 이후 우리가 “일하기 위해 살라”는 ‘노동윤리’에 지배당해왔다고 지적한다. “개인화의 담론”인 노동윤리는 수많은 이율배반적 요소들을 품고 있지만, 대체로 자본주의적 착취에 동의하고 순응하는 주체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가족윤리’는 노동윤리의 공모자다. 사적 영역에서 무급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떠맡는 근대 가족제도의 작동 규범인 가족윤리는 노동윤리와 한 몸이 되어 오늘날 ‘노동사회’를 유지하는 축이 되어왔다. 마르크스주의가 임금노동 그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밝혔다면, 페미니즘은 “두 손에 식료품과 아이, 기저귀를 든 채 겁에 질려 노동자의 뒤를 따라가는 제3의 인물(여성)”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속에서도 생산중심주의에 붙들려, “노골적 또는 암묵적인 노동친화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은이는 이와 달리 노동 자체를 거부하려던 정치적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는 ‘탈노동의 상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노동의 근본적 구조와 지배적 가치를 파헤치고 이를 아예 새롭게 만들려는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임금” 등이 아닌 “일에 맞선 삶”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은 우리를 지배해온 노동윤리와 가족윤리를 깨뜨리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유토피아적 상상’이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지은이는 “너무 많이 원하는 것보다 충분히 원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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