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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총기참사 가해자 엄마 “제정신 유지하려고 책 썼다”

등록 2016-09-22 19:32수정 2016-09-22 21:11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저자 수 클리볼드 서면인터뷰

콜럼바인 비극 생존자들 손 내밀어
“자살충동과 살인 차이 크지 않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저자 수 클리볼드. 수 클리볼드 제공.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저자 수 클리볼드. 수 클리볼드 제공.
총기참사 가해자의 엄마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참사 생존자들이었다. 서로를 이어준 건 가해자의 엄마가 쓴 한 권의 책이었다.

수 클리볼드는 1999년 발생한 콜럼바인 총기참사 가해자 2명 가운데 하나인 딜런의 엄마다. 지난 7월 한국에 번역 출간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한겨레> 7월15일치 ‘책과 생각’ 2면 ‘콜럼바인 총기참사 가해자 어머니의 기록’)는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만남을 매개했다. <한겨레>는 수와 전자우편으로 서면 인터뷰를 했다. 글로 전해지는 수의 말은 표현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 듯했다.

-책을 펴낸 뒤 어떻게 지내시나요.

“주로 전국 단위 자원봉사를 하면서 지냅니다. 강연도 하고, 자살 예방과 자살 유족 돕기에 힘쓰는 전국 조직 두 곳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책이 나온 뒤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부정적 반응은 거의 보지 못했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흔히 듣지요. 책을 출간하면서 정신 건강, 자살 성향, 폭력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기뻤던 일은 콜럼바인 비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공감의 손을 뻗어 연락을 해와서 만날 수 있게 되었던 일이에요. 정말 믿기지 않는 만남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한국에선 당신의 책에 동의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래도 어떻게 부모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의 믿음을 깨뜨리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가 없지요. 그 비극 이전에는 저도 좋은 엄마라면 아이가 많이 힘들 때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게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위험한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상태가 나빠지는 징후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학교 총격 같은 테러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은 백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희박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말없이 고통받고 있거나 자살을 생각할 가능성은 훨씬 크지요.”

-기록을 남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이 비극이 너무나 큰 상처를 남겼는데 그 일을 글로 쓰면서 나쁜 감정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고, 사건 희생자들의 상처를 다시 일깨우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비극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제가 겪은 일을 보면서 크게 각성을 해서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대량 살인 사건을 대하는 사회에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살이나 대량 살인 둘 다에 내포된 가장 큰 위험은 전염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청소년 자살 사건이 있을 때, 학교와 지역 사회, 언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후속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우리 아들의 경우처럼 일부 가해자는 자살 충동 때문에 대량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런 드문 경우에 있어서는 자살의 위험을 줄이는 일이 대량 살인의 위험을 줄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정교한 자살 평가 시스템과 훌륭한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일, 또 행동 건강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총기 문제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미국에서는 총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폭력적 행동이 크게 증가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는 콜로라도 주에서는 총기로 인한 죽음의 80%가 자살입니다. 극도로 취약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라도 총기를 접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표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표지
-당신은 책에서 사건 당시 “우리 아이가 남을 더 해치기 전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그 기도를 몹시 후회했다고도 썼지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뉴스에서 딜런이 사람들을 쏘고 있다고 했습니다. 딜런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고, 그래서 딜런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때 자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제가 무엇을 비는지도 몰랐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딜런이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한 번만 더 볼 수 있으면, 한 번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하고 빌었어요. 제가 딜런이 죽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 기도를 물리고 싶었습니다.”

-보통 가해자 가족들은 신분을 감추거나 이사하는 등으로 정체성을 바꿉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리틀턴에 살고 있어요.

“이름을 바꾸고 이사할 생각도 했지만 그래 봐야 아무 것도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어디로 가든 저 자신은 그대로일 테니까요.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을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는 친구, 가족, 동료, 이웃이 있는 곳에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수는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나 목표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 그런 건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자꾸만 “제가 특별한 계획이나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요?”라고 읽혔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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