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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국민의 ‘권리장전’, 헌법으로의 초대

등록 2016-11-17 19:13수정 2016-11-17 20:27


현행 헌법은 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로 그해 10월 개정 공포된 것이다. 6월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씨의 장례식이 열린 같은 해 7월9일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이씨의 장의차량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헌법은 87년 6월 민주항쟁의 성과로 그해 10월 개정 공포된 것이다. 6월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씨의 장례식이 열린 같은 해 7월9일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이씨의 장의차량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로고폴리스·1만8000원

어쩌다 다시, 헌법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지경’이 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제1조 1항)라고 적힌 손팻말이, 2004년 ‘탄핵’, 2008년 ‘촛불’ 때의 그 구호가 되처 거리에 등장했다. 대통령 ‘탄핵’(제65조) 같은 어려운 말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이 ‘혐의’로 발전해가자 그 직에만 유일하게 주어진 ‘불소추 특권’(제84조)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다수 국민의 요구에 굴복해 대통령이 결국 ‘하야’를 한다면? 사임으로 인한 대통령 직의 공백을 헌법은 ‘궐위’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권한은 헌법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대행을 하게 되며(제71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제68조)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하면 내로라 하는 재벌 총수들이 수십억 원씩을 냉큼 가져다 바쳤을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단죄를 계기로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 것만 같던 대통령 관련 ‘뇌물’ 사건이 왜 또다시 일어나게 된 것일까. 헌법 제4장 ‘정부’편 제1절 대통령(제66조~제85조)을 읽어본다고 해서 그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의 실체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편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냈다”는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정주영 현대 회장이 한 발언의 행간, 그러니까 재벌 총수조차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대통령 권력의 원천 또한 헌법인 것이다.

헌법이 주목받는 정치 상황에서
인권변호사·법철학자 함께 집필

“헌법 정신과 현실 늘 다르지만
간극 좁히려면 헌법 이해 필수”

전문부터 부칙까지 130개 조항
꼼꼼하게 뜯어본 ‘눈높이’ 해설서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에서 권력의 배분까지를 한데 담았다는 점에서 이 ‘법 위의 법’은 “국가의 상징이자 실체”인 셈인데, 그 중요도에 견주어 서술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전문과 열 개의 장, 그 안에 품고 있는 130개 조항은 우리 사회의 구성·작동 원리를 모두 서술하고 있음에도 3천자를 넘지 않을 정도로 간결하고 건조하다. 그러니 헌법을 혼자서 읽고 이해하려 드는 것은 안내책자 없이 루브르를 둘러보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일 수 있다.

<지금 다시, 헌법>은 제목처럼 ‘지금’ 헌법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일반 독자를 헌법의 세계로 이끄는 눈높이 해설서다. 물론 그 대상은 1987년 6월 항쟁의 정신을 반영해 그해 10월29일 전문이 개정된 현행 헌법이다. 책은 헌법의 맨 앞 표제부터 맨 뒤 부칙에 이르기까지, 의미와 판례, 법리와 사례, 향후 개헌 때 반영했으면 하는 새로운 논점 등이 담긴 주석을 빠짐없이 달아 놓았다. 인권 관련 사건을 많이 다뤘지만 ‘인권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마뜩찮아 하는 ‘그냥 변호사’ 차병직(법무법인 한결), 대학 시절부터 그의 ‘절친’이면서 법철학 전공을 위해 법대 졸업 후 철학과를 다시 다니고 장기간 독일에서 유학한 윤재왕(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병직이 아끼는 후배 변호사 윤지영(법무법인 공감)이 7년 전 함께 냈던 <안녕 헌법>을 대체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 썼다.

“헌법과 헌법 현실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다. (…) 헌법은 물론 헌법 현실도 종국에는 우리가 이루어내는 것이다. 행동으로 현실을 창조해가는 과정에 이성과 감정의 배분을 어느 정도 비율로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에도 헌법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 책은 그런 사정을 고려해 평범한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헌법에 해석을 붙인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1조 1항의 표현은 국호와 함께 모든 형태의 독재, 전제주의에 반대하는 ‘주권재민’의 이념을 담은 것으로, 다른 조문에 비해 의미나 효력이 커서라기보다는 강한 상징성 때문에 맨 앞에 놓였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이런 식으로 헌법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기본법’으로 번역되는 독일 헌법의 제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그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필자들은 여전히 ‘국가’ 개념을 중시하는 이 조항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헌법의 주인이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라면 헌법의 첫 조문이 굳이 지금과 같을 필요는 없지 않냐는 인식이다.

이런 방식의 ‘화두 던지기’는 이 책만의 뚜렷한 특징인데, 예를 들어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문(제11조 2항)은 이제 너무나 당연해 별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빈부 격차에 따른 경제적 계급 철폐로 대체되어야 한다거나, 언론·출판에 타인의 명예와 권리 또는 공중도덕과 사회윤리 침해를 하지 말도록 명시한 조항(제21조 4항)은 열거된 기존 가치가 공익을 위한 알권리와 균형을 이루도록 고치는 편이 타당하다는 제안으로 나타난다.

같은 맥락에서 지은이들은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해설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전자주민카드에 열 손가락 지문 날인을 의무화한 정부의 방침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조문(제17조)에 합당한지를 묻고, 집회·결사의 자유(제21조)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또는 경찰의 판단에 따라 수시로 침해당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를 반영한 입법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지금 항간의 관심사인 대통령의 불체포 특권에 대해서도 “결코 대통령 개인에게 부여한 특권이 아니”라는 점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빌려 명확히 하고 있다. 헌재가 1995년 결정례에서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외국에 대해 국가의 체면을 유지해야 할 필요 때문에 이 특권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직 중엔 살인을 해도 뇌물을 받아도 공소시효의 진행만 정지하고 기소를 하지 않지만, 퇴임 뒤엔 곧바로 체포해 법정에 세울 수 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헌법 관련 지식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애초 유진오가 초안을 잡은 헌법안에서 정부 형태는 양원제를 전제로 한 내각책임제였다고 한다. 그런데 초안 제2회독이 끝난 상태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제를 하지 않으면 자신은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심한 몽니를 부린다. 이에 유진오가 윤길중, 허정과 함께 직접 이승만을 설득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헌법안 조문은 대통령제로 수정되기에 이른다. 이승만의 노욕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불러들인 단초인 셈이다. 책은 미국산 ‘프레지던트’(president)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초안의 ‘인민’이 왜 ‘국민’으로 바뀌었는지 등도 소개하고 있다.

날마다 헌법 ‘정신’과 헌법 ‘현실’의 간극을 확인하게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지적 허기’를 느끼는 독자라면 위안과 격려를 기대해봄직하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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