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지음/현대문학·1만4800원 서양 근대 문명을 풀이하는 굵직한 저작들을 써온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가 역사와 문학을 연결하는 작업을 담은 책을 펴냈다. 그는 “역사와 문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천착하여 인간과 사회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동시에 그 내밀한 속사정을 읽으려 하는 점에서 분명 서로 상통한다”고 말한다. 2012년 <현대문학>에 ‘역사산책’이란 이름으로 연재한 글 11편을 묶었다. 지은이의 관심사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매 주제마다 세세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하는 동시에, 이를 다시 인류 문명의 큰 흐름에서 풀이해내려는 접근 방식이 돋보인다. 예컨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카이>를 통해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그리스 문명의 특질을 짚어내고, 16세기 멕시코의 성화 ‘과달루페의 성모’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토착 신앙을 가톨릭 신앙으로 대체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알랭 레네의 영화 <밤과 안개>를 통해 인류사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직시하고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역사 인식의 태도는 미시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를 다룬 꼭지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16세기 이탈리아의 방앗간지기 메노키오가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은 기록에 대한 연구서다. 메노키오는 스스로 읽어낸 책들을 바탕으로 사회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가 지배층으로부터 ‘신성을 부정했다’며 처벌을 받았다. 지은이는 당시 인쇄술 발전 등에 힘입은 민중 문화가 엘리트 문화와 갈등을 일으켰고, 엘리트 문화가 이를 공격하여 복속시키려 했다는 점을 되새긴다. 지은이는 “이것이 이탈리아 산골의 한 방앗간지기의 내면을 재구성한 작디작은 세계로부터 끄집어낸 역사의 큰 의미”라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