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과 내시
박종성 지음/인간사랑·2만원
그 자신 권력자가 아니지만 권력자의 곁을 지키며 권력의 일부를 나누어 누리는 자, 절대 크지 않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측근권력’의 발호가 또다시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문고리’라는 경멸적 표현 말고도 기생권력, 보조권력, 파생권력 등 여러 학술적 호칭을 얻은 ‘그들’은 동로마제국과 고려의 멸망을 재촉했고, 중국의 진·한·당·명을 위기에 빠뜨렸는데 조선에서도 역시 문제적 존재였다.
“군주와 날마다 친히 접촉함을 뽐내는 그들은 비할 수 없는 건방진 태도로 모든 고관들에게 대들고 정승마저 모욕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이런 짓을 하다가는 아무도 무사할 수 없으리라. 양반이고 서민이고 모두 그들을 멸시하면서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시는 조선조 내내 전략적 굴신을 통해 기생 권력을 누린 ‘호가호위’의 대표적 직능으로 그려진다. 저자인 박종성 교수가 직접 그린 내시의 이미지. 인간사랑 제공
1800년대 조선을 기록한 관찰기 <조선교회사서론>에서 프랑스인 신부 클로드-샤를 다예는 ‘내시’라는 이름의 이 기이한 권력층을 아전과 함께 매우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이처럼 그들이 애초 주어진 것 이상의 권력을 휘두를 개연성, 이를 염려하는 경고는 조선 초 대사헌 남재가 태조 이성계에게 올린 상소문에서도 발견된다.
“진나라, 한나라 이래로 환관의 환난은 (…) 혹은 구변이 좋고 아첨을 잘 함으로써 군주를 미혹하게 하기도 하고 혹은 군주의 총명을 가림으로써 나라를 그릇되게 하기도 하였으니 (…) 처음에 법을 만들지 않으면 뒷날의 폐단이 뜻하지 않은 기회에 발생할 것입니다.” 이런 우려는 고종 34년(1897년) 내시직이 폐지될 때까지 조선조 내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대학에서 역사학이 아니라 정치학을 가르치는 박종성 교수는 새 책 <아전과 내시>에서 비록 일은 ‘음지’에서 하지만 지향만은 ‘양지’에 두고 있는 이 특수한 권력 집단의 면모를 역사정치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것을 ‘관계의 정치학’이라는 말로 풀었다. 정치권력의 작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권력의 질서를 위에서 아래로만 내리 훑을 것이 아니라 ‘곁’과 ‘뒤’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아전과 내시를 공히 다루고 있지만, 눈길이 더 가는 쪽은 왕을 ‘모시는’ 낮은 권력자, 내시다. 내시는 ‘거세된 남성성’이 기본이다. 고환과 성기를 모두 제거하는 중국과 달리 조선 내시는 성기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생식’의 상실은 자기 비하와 조롱, 멸시를 수반했다. 실제로나, 지위상으로나 그들은 꿇어엎드린 존재다. ‘낮은’ 위치에서 허리를 굽힌 채 최고 권력자에게 최대한의 복종과 봉사를 하는 것이 애초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지만, 공식·비공식 어명을 출납·집행했다는 점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최측근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양반 관료인 조신들조차 왕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그들과 친해지려 애썼다. 140명 정원에 내관, 환자 등으로도 불린 이들은 일하는 공간에 따라 내시, 중관, 내환 등으로, 생식 기능이 없는 신체 특징 탓에 엄인, 엄환, 화자 등 모두 10여 가지 이름을 얻었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처신해야 할 그들이지만, 박 교수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원본에서 이들이 거론되는 횟수만 7500차례가 넘는다. 재위한 왕이 모두 27명이니 평균 횟수를 따져도 279건에 이른다. 개중엔 흑색부패는 물론 역모나 모반 가담, 시해 시도도 들어 있다. 내시들로 하여금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안하여 어디서나 굳건하리라”라고 새겨진 목패를 몸에 지니게 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을 정도이니, 구체적인 폐해는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겠다.
이들 내시의 행태를, 박 교수는 ‘전략적 복종’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언뜻 비루해 보이는 내시들의 굴신이 실은 나름의 이익 추구를 위한 정치 행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스스로 권력자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수긍하는 한편 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최고 권력자와 조신들 사이에서 염탐과 조작, 음모와 견제, 경계와 사주를 통해 정치갈등을 부추기거나 증폭하며 나름의 권력을 도모한 대표적 기생 직종이 바로 내시라는 것이다.
“관료들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이를 세습한다는 기득권 향유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최고 권력과 임의 대면하거나 지근거리에서 상시 소통하지 못한다는 약점 때문에라도 내시들과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다. 도리어 집권세력 특유의 정치적 콤플렉스로 내면화하게 마련이다. 이를 자기권력 확장의 결정적 기회로 놓치지 않은 이들 역시 내시다.” 이들의 역할과 비중은 왕의 권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커졌다.
애초 논고문과 변론문의 균형을 염두에 뒀던 박 교수의 구상은 내시들 스스로 남긴 기록이 전무한 사정 탓에 결국 논고문으로 기울었다. 그가 추출한 결론은, 내시가 보여준 측근권력의 생리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시는 오늘날에도 재생되고, 확장되고 있다고 말한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올봄에 기획이 이뤄졌다는데, 운이라고 하기엔 출간 ‘타이밍’이 절묘하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