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 발자국
사흘 눈발이 푹푹 빠져 지나갔으나 산마을 길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노루 발자국 따라 산에 올라갔으나 산마루에서 만난 건, 산마을이다
아랫녘 산마을로 곧장 내려왔으나 산마을에 먼저 당도한 건, 산이다
먼 산을 가만가만 바라보았으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초저녁별이다
초저녁별이 성큼성큼 다가왔으나 밤하늘에 찍힌 건, 노루 발자국이다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에 수록
애써, 심심하게 사는 겨울이다. 올해는 술까지 버리고 여기까지 오니 사람 만날 일도 없이 더없이 심심해서 그만이다. 처자식이나 궁하지 않게 먹여 살리면서 이대로 그냥저냥 늙어가도 좋겠다. 돌이켜보니, 서울과 정읍을 오가는 삶을 산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서울은 아내와 딸이 있어서 좋고 정읍은 유년시절과 노모가 있어서 외면할 수 없다. 한동안, 과분한 일터를 내준 전주를 경유하는 삶을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저 고맙고 따뜻하게 간직하고만 있다.
유쾌하게 쓸쓸한 시간을 만나기 위해 뒷산에 오르곤 한다. 이건 서울에서나 정읍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그저 참나무라고 뭉뚱그려 부르던 것을 이제는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와 갈참나무와 떡갈나무와 졸참나무와 굴참나무의 이름을 서툴게나마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물박달나무나 귀룽나무와는 한쪽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청가시덩굴이나 청미래덩굴과도 서로 성가시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잘 지내고 있다. 노린재나무에게서 파란 잉크를 얻어다가 시를 쓰기도 하고 팥배나무에게서 빨간 볼펜을 빌려다 시를 고치기도 한다. 두어 해 전, 배추흰나비를 묻어준 적이 있는 굴참나무 숲을 지날 때에는 수천수만 배추흰나비 떼가 일제히 이파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해주기도 한다.
지난겨울, 노모 집에 닿아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폭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나를 막무가내로 불러댔다. 하지만 나는 노모가 해 주는 밥을 말끔히 비우는 일로 오래전 먼 길 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거나, 콩을 고르는 노모 옆에 앉아 노닥노닥 고구마를 구워 먹는 일 따위를 소홀히 할 수 없어 폭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돌아간 줄로만 알았던 폭설은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나를 찾아왔다. 폭설의 성의를 더는 무시할 수 없던 나는 목이 긴 장화를 꺼내 신고 폭설을 따라나섰다. 폭설은 나를 데리고 먼 마을이 희미하게 보이는 들판으로 갔다. 푹푹 빠지며 걷다 보면 얼음이 깔려 있거나 짚단이 쌓여 있는 논뙈기가 나오기도 했고, 아직 뽑지 않은 고춧대가 겨우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비탈 밭뙈기가 나오기도 했다. 희고 멀게만 보이던 마을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을 땐 늙은 느티나무에 기대어 잠시 쉬기도 했던가. 억새와 갈대가 번갈아가며 힘차게 팔을 흔들어주던 강가를 걸을 땐 없던 힘이 나기도 했다. 어둠이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폭설과 나는 좀 더 걸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들어와 장화를 벗어 탈탈 털고 목도리를 풀었을 때, 목에 감겨 있던 흰 김도 풀어져 나왔다. 노모가 묵은지를 넣고 자작자작 볶은 돼지고기에서도 수북하게 퍼진 흰 쌀밥에서도 흰 김이 풀풀 올라왔다.
박성우 시인
내가 시를 짓고 농사 시늉을 하는 곳은 자두나무 정류장이 있는 마을에 있다. 눈발이 어지간하다 싶으면 자두나무 외에는 아무도 정류장에 나오지 않는 산마을. 버스가 재를 넘어오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것을 알 리 없는 고라니만이 정류장 바로 앞에까지 나왔다가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는 산마을. 이 마을에서 나는 올해 콩농사 시늉을 좀 했다. 들락거리는 멧비둘기가 어지간해서 콩을 한두 알씩 더 보태 심고는 돌밭 위 이팝나무와 화살나무 사이에 대나무 장대를 걸고 빨래를 널어, ‘빨래허수아비’로 멧비둘기가 오는 것을 막았다. 콩은 떡잎을 벌리는가 싶더니 줄기와 새순을 다부지게 밀어 올렸다. 올해는 콩농사가 제법이겠구나. 한데, 밤마다 고라니가 내려와 연한 콩 순만 골라 똑똑 따 먹고 갔다. 순을 죄 뜯긴 콩 줄기는 그야말로 볼품없이 앙상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으나, 장맛비가 지나간 뒤로 못 봐주겠던 콩은 곁줄기를 두 배로 뻗어 무성해졌다. 어느 폭설 밤에 고라니가 찾아와 콩 순을 따 먹은 게 아니라 밤마다 콩 순지르기를 하고 간 거라고 끄먹끄먹 밀린 품삯을 내놓으라 하면 나는, 콩을 몇 됫박이나 퍼주어야 하나. 고라니가 처마 밑에 콩자반 같은 똥을 찔끔 누고 가고, 초저녁 밤하늘에 노루 발자국이 찍히는 찬 겨울이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청소년 시집으로 <난 빨강>, 동시집으로 <불량 꽃게>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산문집으로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가 있다.상징, 잃어버린 것들 되찾는 마법
이 시를 읽으면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눈 내린 산속에서 노루 발자국을 본 일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로 거주지와 세대의 차이가 이를 가른다. 폭설이 덮인 산길에서 노루 발자국을 만나본 사람들은 농촌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대략 중년 이후의 연배이리라. 노루라니? 멸종되지 않았어? 반대편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반의 ‘초인간적인’ 세상이 열리는 지금, 상당수의 사람들은 노루보다는 로봇을 더 친근하고 현실적인 대상으로 느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노루 발자국’을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적인 삶의 상징으로 해석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노루 발자국을 직접 본 일은 없어도, 노루 발자국이 상징하는 세계에 마음의 일부가 속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 시의 마지막에 노루 발자국이 “밤하늘에 찍”혀 있는 것도 상징의 자격을 갖춤으로써다. 밤하늘에 별처럼 박혀 있는 노루 발자국은 깨끗하고 무심한 자연의 표정을 뜻하고, 가난하지만 온기 넘치는 삶의 징표를 의미한다. 시는 이처럼 실제 체험이 없는 사람들도 상징을 통해 불러 모은다. 상징이라는 풍부한 우회로는 닿지 못할 곳이 없고 품지 못할 것이 없다. 상징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곳을 초월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을 향유하며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시인 박성우는 ‘정읍 촌사람’의 정체성을 사랑하고, 그 삶의 조각들을 “투명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소설가 현기영)으로 승화해 왔다. 그는 실제의 노루 발자국이 사라지는 세계를, 상징의 노루 발자국을 통해 회복하기를 꿈꾼다. 물론 그가 회복하려는 것은 세계 자체라기보다는 세계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먹기만 한다면 우리는 실제와 상징의 노루 발자국이 일치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박성우는 이 마법 같은 시간의 통로가 평범한 일상의 길목에 나 있음을 알려 준다. “유쾌하게 쓸쓸한 시간을 만나기 위해 뒷산에 오르곤 한다. 이건 서울에서나 정읍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만나는 것들의 목록은 따뜻하며 끝이 없다. 상수리나무, 물박달나무, 청가시덩굴, 어머니가 해주신 뜨신 밥과 묵은지를 넣고 자작자작 볶은 돼지고기 등등. 즉 우리가 어디에 있든 ‘뒷산’이 있고, 밤하늘이 있으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하는 상징들이 있다는 것.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