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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다시, 공감과 소통을 생각하다

등록 2016-12-29 19:05수정 2016-12-29 19:53

주원규의 다독시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박상미 지음/북스톤(2016)

공감,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지금처럼 구차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싶다. 국민과 소통하고 싶다며, 국민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공감하겠다며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던 청와대와 정부의 말들이 이제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서글플 정도로 허다하다. 공감과 소통이란 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정책에 단골메뉴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2016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부처는 국정농단의 구설, 그 핵심에 서 있다. 그런 그들이 힘주어 떠들어대던 공감과 소통이란 키워드는 이제 빛이 바랜 것을 넘어서서 화장실 휴지로도 쓰기 어려운 흉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소통이란 키워드는 더 이상 효용불가란 말인가.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할 것이다. 공감과 소통은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살이에 있어 여일한 필수조건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사태 역시 공감 불능, 소통 불능의 거리감이 낳은 비극 아니던가. 그런 맥락에서 공감과 소통의 화두는 2017년에도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달라져야 하는 것이 있다. 공감과 소통의 주체가 수직적 계도와 교화가 아닌 자기발견과 상호 대화의 수평적 연대로 전환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겸 작가 박상미가 펴낸 신간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은 공감과 소통의 제 의미를 효과적으로 발굴해낸 작업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사회 각 분야에 이른바 명사로 알려진 이들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나 자신만의 깨달음, 그 찰나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삶과 연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빠져드는 배우 김혜자,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며 인간의 원초적 정을 기꺼워하는 시인 신경림, 귀환 입양인들과 연대하여 미혼모 가족을 돕는 활동을 활발하게 꾸려나가는 섀넌 두나 하이트까지. 작가는 이들에게서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에 깃발이 되어준 인물, 사건, 상황을 경청하고 이를 기록물로 담아내면서 한 가지 중요한 공통분모를 도출해낸다. 그것은 모두 공감과 소통의 연대 가능성이다. 또한 이 책은 유명한 명사들의 인터뷰 기록물이 자칫 빠져들 수 있는 성공담의 함정을 넉넉히 비켜섰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에게서 나타나는 진실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애쓴다. 그 노력은 인터뷰이의 성공 노하우를 획득하려는 성과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인터뷰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공감의 가능성 위에 올려세운다. 결국 책 속의 인터뷰이들은 더 이상 사회 각 분야의 명사들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되는 것이다.

가장 상투적인 말들은 어쩌면 그만큼 모든 이들에게 소중하고 절박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공감과 소통의 재조명이 필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누군가의 권력지향이 망쳐 놓은 공감, 소통의 키워드를 애써 복원하는 일, 사람 사는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힘쓰는 일, 그 애씀이 모일 때, 비로소 이 세상, 살 만하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마저 없다면 우리의 2017년은 과연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의문이다.

주원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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