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정치의 시대
제임스 퍼거슨 지음, 조문영 옮김/여문책·2만원
지난 20년은 기세등등했던 신자유주의가 끝내 승리를 거둔 시기인가? 아니면 여전히 향수를 자극하는 서구식 복지국가 모델이 남은 힘을 발휘했던 시기인가? 저마다의 이론을 앞세운 논쟁이 치열하게 오가는 가운데, 인류학자인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현실을 보라”고 말한다.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새로운 복지 시스템”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이 현실이,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발명해내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역설한다.
퍼거슨은 지난 30여년 동안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 조사와 이론 작업을 바탕으로 빈곤, 개발, 이주, 현대성 등에 대한 연구를 벌였으며, 특히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기본소득’ 논의에 깊이 간여해온 학자다. 이번에 제자인 조문영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가 옮긴 <분배정치의 시대>(2015)는 우리말로 처음 소개된 그의 저작이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철폐 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정권을 잡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오랫동안 견지했던 사회주의적 노선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적 노선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불평등은 과거보다 더욱 확대됐고, 일자리는 끊임없이 줄어 공식 실업률이 25%에 달할 정도였다. 신자유주의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대체로 이 지점에서 별다른 대안 없이 끝난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들이 제대로 보지 않은 또 다른 현실을 끄집어낸다. 현재 남아공은 국내총생산(GDP)의 3.4%가량을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1600만명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나라다. 아동보호지원금, 노령연금, 장애보조금 등의 보조금 형태로, 정부가 돈을 주는 조건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나미비아, 보츠와나 등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현금지급(cash transfer)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해왔다. 멕시코의 원주민 지원 정책인 ‘오포르투니다데스’, 브라질의 빈곤층 지원 정책인 ‘볼사 파밀리아’ 등도 같은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금지급’은 정부 정책뿐 아니라 구호·원조의 주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니셰프 누리집 캡쳐
지은이는 이 현금지급 프로그램들이 서구식 복지국가 모델의 ‘안전망’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복지국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임금노동과 전통적 가족제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 설계됐고, 안전망의 주된 목적은 일탈된 소수를 다시 원래의 생산 대오로 되돌려놓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좌파든 우파든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반면 아프리카 등 글로벌 남반구(지구촌 빈곤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현금지급 정책은 노동과 무관한 기준들을 토대로 하며 절대 다수가 혜택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예외적 조처’로서 시행하는 서구식 복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산업 발전에 따른 일자리 확대란 목표가 거의 불가능한 목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냥 “물고기를 주는”(이 책의 원제다) 현금지급이 다수 빈민 대중이 기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된 것이다.
좌파나 우파나 공통적으로 앞세워온 ‘생산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마땅히 임금노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부장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은 늘 경멸과 혐오,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생산주의 관점에서 탈피해 ‘분배’에 초점을 맞춰보면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정치적 기획의 토대라고 주장한다. 자동차 유리닦이, 구걸, 앵벌이, 소매치기, 가족에게 기대는 것 등 생산에서 배제된 “빈자들의 불안정한 생존전략은 (마르크스주의가 비판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악한 약탈이나 (신자유주의가 과대 포장하는) ‘비공식 경제’의 기업가주의가 아니라”, ‘사회적인 부’를 분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분배생계’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임금노동이나 동정에 호소하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나의 몫’을 달라고 요구하는 다양한 행위들을 ‘분배노동’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글로벌 남반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노동과 전통적 가족제도는 세계적으로 점차 형해화하고 있다. 2012년 미국에서는 전체 3억1400만 성인 인구 가운데 단지 1억4200만명이 고용상태였다고 한다. 지은이가 집중하는 대목은 현금지급 복지 프로그램들이나 ‘기본소득’ 프로그램이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냐 없냐의 여부가 아니라, 생산이 아닌 분배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청구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인식적 토대의 건설이다. 노동력 부족에서 잉여 노동력의 시대로 흘러가는 지금, ‘의존’을 선언하는 것은 “현재의 급진적 특수성에 대한 절박하고도 설득력 있는 호소”다. “이 모든 논의는 일에 대한 보상도, 도움을 구하는 호소도 아닌, 노동이나 어떤 종류의 장애, 무능력에 상관없이 소득에 대해 누구나 정당한 자격을 갖는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를 발견하게 할 것”이라 한다.
제임스 퍼거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은이의 사유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문제를 파고들었던 미셸 푸코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1979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푸코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필적할)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와 그에 관한 텍스트에 숨어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에서 추론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발명되어야 한다.” 이를 인용하며 지은이는 “우리의 정치는 연역적이기보다 귀납적이어야 하고, 판단적이기보다 실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현실은 ‘분배정치의 시대’를 향하고 있다고 짚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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