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테리 이글턴 지음, 조은경 옮김/알마·1만9000원
테리 이글턴(사진)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형이상학적 담론을 깊이 다루는, 독특한 지적 작업을 펼쳐온 영국의 비평이론가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좌파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무신론을 비판한 <신을 옹호하다>(2009) 등의 저작에서 볼 수 있듯, ‘신을 옹호하는 것’은 그의 주된 논의 주제 가운데 하나다.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2014) 역시 계몽주의, 관념주의, 낭만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거대한 서구 역사의 지적 흐름 속에서 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는 저작이다.
서구 세계에서 신의 존재는 오랫동안 인간의 정신과 일상 모두에 뿌리내렸지만, 근대 세계에 들어 인간은 끊임없이 신의 대체자를 찾는 일에 집중해왔다. 지은이는 “계몽주의 이성에서부터 모더니스트의 예술까지 모든 지적 현상이 한때 신이 있던 자리의 틈을 메우려 시도했지만, 그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을 재편하려 했지만, 사실상 그들은 신성의 실체가 아닌 종교가 틀어쥐고 있던 정치적 권력에 공격을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앙상한 기계적 합리성만으로는 가치의 문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관념주의는 이성에 국한하지 않은 인간 정신을 절대성의 토대로 두고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신화, 문학, 예술 등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민 종교적 제의와 상징을 대체할 수단으로 검토됐다. 그러나 “소수에 의해 만들어진 고도의 지적 작업인 관념론은 세속화된 종교의 자리에 오르기엔 너무 소수만을 위한 사상이었다.” 낭만주의 사상은 체계보다도 예술을 앞세웠지만, 그 역시 종교를 세속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런 시도들은 일반 대중의 삶과 유리된 소수 엘리트의 지적 과업에만 머물렀을 뿐, 대다수 평민들이 견지하는 ‘믿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20세기 모더니즘이 도래하면서 영화, 텔레비전, 광고, 대중 언론 등의 형태로 ‘문화’라는 개념이 부흥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가장 숭배받는 진리와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의 매일의 존재를 연결하는 종교의 능력에 비견될 만한 상징적 형태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며, 문화 역시 신의 대체자는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20세기 후반 절대성과 도덕적 상부구조 자체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의 몰락’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과 근본주의의 대두에서 보듯, 이 시기 서구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종교적 믿음과 대치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지은이는 ‘신의 죽음’보다는 ‘인간의 불신’을 문제로 여겨온 엘리트들의 일관된 태도를 꼬집는다. 언제나 “나는 믿지 않지만 정치적 방편으로 당신은 믿어야 해”라며, 진정한 형이상학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지은이는 종교적 믿음이 “정의롭고 연민하는 공동체”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며,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의 결속에서부터 새로운 형태의 믿음, 문화 그리고 정치가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