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경제학자가 따져본 육아의 경제적 가치? 마이너스!

등록 2017-02-09 19:46수정 2017-02-09 19:51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우석훈 지음/다산4.0·1만6000원

<88만원 세대> <촌놈들의 제국주의> 등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우석훈이 새로 낸 책은, 무려 ‘육아기’다.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제목부터 경제학자의 ‘백기’ 선언이다. 육아는 “경제적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쉽게 말하면, 돈이 많이 든다. 중산층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평균적으로 드는 돈이 2억 가량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2억 원 이상을 쓰거나, 2억 원만큼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것” 사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출산과 육아는 합리적이지 않다. 결혼 9년 만에 첫 아이를 만난 늦깎이 아빠는, 육아의 현실을 만나 당혹한다. 국가에서 주는 ‘고운맘카드’로 30만원을 지원받았는데(현재 50만원으로 증액), 60만원짜리 양수검사 한번에 마이너스가 됐다. 몸이 약했던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집중치료실에 입원했다. “진짜로 비용이 겁나게 많이 나왔다.” 둘째가 병원을 오가는데, 부인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부인이 퇴사한다. 재취업을 시도하지만, 그 동안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다. 외벌이 부부의 자녀는 국공립어린이집 대기 후순위로 밀린다. 우선순위 조건은 셋째부터다(2016년 하반기부터 우선순위 규정이 2자녀 이상으로 바뀌었다). 둘째는 세살이 되자 병원에 더 자주 갔다. 경제학자의 통장엔 5원이 남았다.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학문이 경제학인데, 육아는 그 예상의 수준을 뛰어넘어버렸다는 고백에선 처절함이 느껴진다.

아빠는 밖에 나갈 일을 줄이고, 씀씀이를 줄이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초보 ‘육아빠’의 고민거리는 사방에 널렸다. 아내를 위해 가장 비싼 조리원을 예약하려다 실패하고 출산수당제도와 산후조리원의 대안정책을 궁리한다. 일본의 의료 정책과 프랑스식 육아법에서 국가의 역할을 묻고, 무료 박물관과 공원 리스트를 말하다 도시공간 분석으로 뛰어넘는다. 아들이 좋아하는 공룡의 학명을 보고 일본과 한반도의 공룡 분포 차이를 짚고, 유모차 추천 기종(?)과 영어유치원의 효용성을 따지는 경지에 이르면 생활과 학문의 경계선은 가물가물해진다. 이렇게 우리는 경제학자가 쓴 400쪽에 육박하는 실용(?) 육아기를 얻었다.

그의 육아 고투는 대한민국 여느집과 다르지 않다. 아빠의 직장에 ‘직장어린이집’이 있는데 “떨어져서” 먼 거리 어린이집을 전전하다 결국 아빠까지 퇴사하고, 도우미를 구하면 그 도우미에겐 “갑자기 시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간병을 해야하는” 기막힌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블랙코미디다. 두 아들에게 박치기와 발차기를 당하며 낮잠을 동시에 재울 방도를 고민하고, 한국 남자들의 가사기여도는 이슬람 수준이라고 독설하는 데 이르면 웃음도 터진다.

그 자신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 눕혀놓고 그 옆에서 컴퓨터로 (저술)작업을 하려 했단다. “그런데 태어나서 노트북을 본 아기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광속에 필적할 속도로 기어와 노트북을 마구 만지는 일이었다. ‘아, 불가능하구나!’ 누구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바보였다는 깨달음을 마음 속에 한 번 더 적립했다.” 조앤 롤링이 커피숍에서 유모차를 끌고와 소설을 썼다는 실화, 부모라면 ‘신화’라는 걸 안다. 육아 중 글쓰기의 효율성이란, 요즘 휴대용 태양열 배터리 기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일 게다. 그럼에도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육아로 강제격리된 어른의 자기 표현 갈망이 사막만큼 뜨겁고, 아이가 커가는 기간은 눈부시고도 지난하기 때문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