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로베르트 발저, 배수아 옮김/한겨레출판·1만5000원 스위스의 국민 작가이자 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는 로베르트 발저(1878~1956)의 중단편 42편이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으로 책으로 묶여 나왔다. 옮긴이는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며, 그 스스로 발저에게 “펄쩍 뛰어오를 만큼” 매혹된 독자라고 말한다. 발저와 같은 세대였던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도 발저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발저는 가정 형편 탓에 정규 학업을 마치지 못했고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 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작가로 이름을 얻은 뒤에도 이른바 ‘지식인’ 사회와 가깝게 지내지 못했고 20여년을 정신병원에서 살았다. 그는 걷기와 쓰기에 강박적으로 몰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크리스마스날 산책에 나섰다가 눈 위에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 그의 최후였다. 발저의 작품들 속에는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비극적인 여행”(옮긴이)을 연상시키는 그의 전체적인 삶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짐짓 과장된 어조로 자신의 무력함과 초라함, 그리고 그것을 업신여기는 세상을 자조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남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군중 속을 홀로 거닐며 작은 것들을 관찰하는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알알이 박혀있다. “삶이 내 어깨를 붙잡았고, 비범한 시선으로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빌케 부인>)거나, “내가 본 것은 작고 빈약했으나 동시에 위대하고 의미 깊었으며, 소박하지만 매혹적이었고, 가까이 있으면서 훌륭했고, 따스하면서도 사랑스러웠다”(<산책>) 같은 문장들이 부서질 듯하면서도 단단한 그의 내면을 엿보게 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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