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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창시자’ 후설 사상의 전모를 밝히다

등록 2017-05-11 19:59수정 2017-05-11 20:30

후설 저작 8종 번역 이종훈 교수
그의 현상학에 대한 종합 안내서
“후설 사유 일관돼…왜곡 없어야”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어둠을 밝힌 여명의 철학
이종훈 지음/한길사·2만8000원

‘현상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은 “철학자로 살아왔고 철학자로 죽고 싶다”는 유언처럼 죽는 날까지 집필과 강연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생전에 저작들을 워낙 띄엄띄엄 발표한데다 말년에는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탄압을 받아 제대로 된 학술 활동을 펴지 못해, 한동안 후설은 마르틴 하이데거나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 뒷세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가교’ 정도로만 인식됐다. 그의 장례식은 조문객도 없이 치러졌을 정도로 후설의 죽음은 쓸쓸했다.

그의 사후인 1950년 벨기에 루뱅대학교에서 <후설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후설 현상학은 본격적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반 브레다 신부가 1938년 나치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후설 부인으로부터 그의 유고를 모두 건네받은 것이 ‘후설 르네상스’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에드문트 후설은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어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사태 그 자체’를 직관하는 현상학을 창시했다. 한길사 제공
에드문트 후설은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어 의식에 직접 주어지는 ‘사태 그 자체’를 직관하는 현상학을 창시했다. 한길사 제공
<후설현상학으로 돌아가기>는 그동안 후설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힘을 쏟아온 이종훈 춘천교육대 교수가 쓴 후설 안내서다. 주저로 꼽히는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데카르트적 성찰> <현상학적 심리학> 등 국내에 나와 있는 후설의 저작 8종이 그의 번역이다.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는 “‘후설이 어느 시기에는 객관성을 중시했다가 다른 시기에는 주관성으로 돌아섰다’ 등 후설의 사유를 단계로 구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후설의 사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됐다. 그 전체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지은이는 후설에 대한 온갖 오해들이 후설 사유의 핵심인 ‘선험적 현상학’과 그 토대가 되는 ‘지향성’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고 봤다. 20세기 말 21세기 초 서구에서는 자연과학의 객관성을 만능이라 보는 실증주의와 주관적 경험에 매달리는 심리학주의가 만연했는데, 애초 수학자로 출발해 심리학·논리학을 경유한 후설은 객관성과 주관성을 구분하는 이분법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 대신 후설은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으로서,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취지의 ‘지향성’ 개념을 내놓았다.(<논리연구> 제2권) 주관과 객관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주관-객관-상관관계’의 틀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지향성’의 토대 위에서 ‘사태 그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되돌아가려는 후설 고유의 현상학이 싹텄다. 후설은 인간이 주어진 사태를 인식하는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판단중지’, ‘환원’ 등의 방법론을 제시했다.(<이념들> 제1권) ‘판단중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기중심적 경향성을 배제하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려는 방법이다. ‘환원’에는 인간의 직관에 기대어 개별적 사실들로부터 보편적 본질을 끌어내는 ‘형상적 환원’과 모든 인식형성의 궁극적 근원으로까지 되돌아가기 위한 ‘선험적 환원’이 있다. 지은이는 “후설은 과학만능주의 등에 빠져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을 근원에서부터 규명하려고 했으며, 그 핵심인 ‘선험적 현상학’을 빼놓고는 후설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이데거 등 뒷세대의 현상학 조류와 구분되는 후설만의 특징도 바로 이 대목이라 했다.

독일 괴팅겐대학교 연구실에서 작업 중인 후설의 뒷모습. 한길사 제공
독일 괴팅겐대학교 연구실에서 작업 중인 후설의 뒷모습. 한길사 제공
그러나 후설의 저작들을 발행 순서로만 판단한다거나 모든 저작 사이에 흐르는 기본적인 태도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면, 후설 사유의 전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심리학주의를 ‘회의적 상대주의’라 비판한 <논리연구> 제1권(1900)이 나왔을 때 일각에선 후설을 ‘객관주의자’로 평가했다. 1년 뒤 다양한 의식 체험을 분석한 <논리연구> 제2권이 나오자 ‘주관적 관념론’, ‘심리학주의로 후퇴’란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두 책의 초안은 모두 1898년께 완성됐고, 그 속에 담긴 사유도 동일하다고 한다. 동시에 출간됐다면 ‘객관주의 대 주관주의’ 같은 무의미한 논란은 일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현상학의 주된 방법론을 제시한 <이념들>의 경우에도, 1부는 1913년 ‘제1권’으로, 2부는 후설 사후인 1952년에야 <후설전집> 일부로 출간됐다. 이처럼 발행 시기에 단절이 있다 보니 “1권은 선험적 관념론, 2권은 경험적 실재론” 등 마치 서로 다른 시기에 작성된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룬 책인 양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후설은 애초 3부작을 한꺼번에 계획했고, 1부가 발행되기 전인 1912년에 이미 2부의 초고가 완성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지은이는 후설의 주저들을 발행된 순서가 아니라 초안을 작성한 순서대로 배열하고, 그 흐름과 의미를 종합적으로 짚는다. 한 사상가의 발자취를 충실히 뒤쫓는 학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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