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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비현실적 라캉 대신 클라인에 주목해야”

등록 2017-05-18 19:39수정 2017-05-18 20:26

라캉 비판서 낸 정신분석학자 홍준기
“이론을 위한 이론” 등 맹렬하게 비판
프로이트 비판적 계승 클라인에 ‘눈길’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홍준기 지음/새물결·3만2000원

‘정신분석’이라는 신세계를 연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죽은 뒤 정신분석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그중 자크 라캉(1901~1981)은 가장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의 후예다. 그는 1952년 국제정신분석학회로부터 제명당했지만 되레 주류 정신분석이 프로이트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프로이트의 복귀’를 주창했고, 그의 이론은 당시 유행했던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 사조와 조응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알랭 바디우나 슬라보이 지제크 같은 급진주의 철학자들도 라캉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국내에서도 ‘서구의 첨단 이론’으로 큰 인기를 끌어왔다.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은 국내에서 라캉 정신분석을 깊이 공부한 학자로 손꼽히는 홍준기(54)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스스로 “안티-라캉”의 입장에 선다고 선언하고, 라캉과 그의 이론을 총체적으로 비판한 책이다. “정신분석 이론 및 실천에서 무능할 뿐만 아니라 정직하지 못하며 학문적으로도 비윤리적”, “바디우·지제크 식의 공산주의와 결합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회자된다”, “분석가 중심주의에 빠진 전체주의적 기법” 등 라캉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맹렬하기 그지없다. 지은이는 이 책을 시작으로 연작 형태로 라캉 이론의 전 분야를 비판적으로 읽을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창한 라캉은 서구의 첨단 이론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창한 라캉은 서구의 첨단 이론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라캉을 깊이 연구한 학자가 이렇게까지 혹독한 비판에 나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라캉 이론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데다가 그 이론의 수용도 ‘라캉만이 옳다’는 ‘도그마’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이런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정신분석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모든 이론은 저마다 결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론을 보충해 조화를 찾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마련인데, 라캉 이론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줄곧 극단적인 경향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라캉과 라캉주의자들은 ‘자아’를 상상적인 것으로 보고 “주체의 무의식적 진리를 발견하고 내적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순수’ 정신분석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자아심리학 등 다른 정신분석 분파들은 ‘현실 적응’을 위한 심리치료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프로이트로의 복귀’란 구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런 측면은 라캉 이론이 ‘진보적인 이론’이 되는 데 한몫했고, 당대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와도 쉽게 엮일 수 있게 해줬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자아 그 자체를 상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라캉 이론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에 대한 심리치료조차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비판한다. 라캉 이론은 “현실과 무관하게 내면세계만 들여다보고 밑도 끝도 없이 분석 유희를 하도록 만드는, 철저하게 주관주의적 또는 관념적 분석 이론”, 한마디로 대상에 대한 애정을 결여한 “이론을 위한 이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프로이트가 치료에 실패해 정신분석학계에서 여러 차례 되새겨진 ‘도라’ 사례를 보자. 16살 때 처음 신경증 환자로 프로이트를 찾아온 도라는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어머니, 아버지의 친구로서 도라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케이(K), 아버지와 연인 사이로 발전한 케이 부인 등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었다. 성적 욕망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가 치료에 실패한 프로이트는 훗날 도라가 케이 부인에게 품은 동성애적 요소를 미처 짚어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프로이트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발전시킨 멜라니 클라인. 위키미디어 갈무리
프로이트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발전시킨 멜라니 클라인. 위키미디어 갈무리
그러나 지은이는 “도라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인격체로서 자신을 사랑하고 ‘사각관계’의 구덩이에서 꺼내줄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였다고 지적한다. ‘순수’ 정신분석에 집착한 프로이트는 도라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며, 아예 자아와 현실을 상상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라캉은 이러한 프로이트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대신 지은이는 “진정으로 프로이트를 넘어섬으로써 프로이트의 정신으로 되돌아간 사람은 라캉이 아니라 멜라니 클라인(1882~1960)”이라고 말한다. 클라인은 ‘엄마’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발굴해, 이전까지 ‘남근’에 경도되어 있던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비판적으로 발전시켰다. 엄마(가슴)의 부재를 겪는 과정을 자아 형성의 결정적 시기로 본 그의 이론은 “자아는 필연적으로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통합되거나 분열된다”는 것을 제시했다. 여기서 지은이는 클라인의 이론이 주로 개인의 치료에만 관심을 뒀던 정신분석을 “환경과 사회 문제에까지 닿는 사회이론으로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봤다. 클라인이 말하는 ‘좋은 엄마’의 개념을 학교, 제도, 사회, 국가 등 개인의 성숙을 배양해주는 환경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정신분석은 라캉의 이론이 아니라 클라인의 이론을 토대로 삼아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그 방향은 관념에만 머무는 ‘공산주의 혁명’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이끄는 ‘복지국가’로 향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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