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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촛불혁명, 6월항쟁의 사후적 완성”

등록 2017-06-08 19:40수정 2017-06-08 19:57

분단체제와 87년체제
김종엽 지음/창비·2만5000원

‘분단체제론’과 ‘87년체제론’은 각자 서로에게 이론적으로 기대는 ‘켤레’의 개념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을 거치며 세계체제라는 보편성과 분단된 한반도라는 특수성 사이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현실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이론으로서 분단체제론을 벼려냈다. 한편 1987년 6월항쟁에 의한 민주화 이후, 저작권이 불분명한 ‘87체제’란 말이 여러 갈래로 쓰였는데 2000년대 중반 이를 ‘87체제론’이라는 확고한 이론으로 다듬은 것은 백 교수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른바 ‘창비 그룹’이었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사진)는 87년체제론을 천착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2005년 7월 창비와 ‘함께 하는 시민행동’이 함께 연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았고, 2009년 <87년체제론> 발간에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87년체제가 30돌을 맞은 올해 그동안 김 교수가 펼쳐온 87년체제론을 엮은 책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2016년 가을 시작한 촛불집회에 의해 정권 교체가 이뤄진 시점이라, 지은이의 87년체제론이 이에 대해 어떤 풀이를 내놓았을지 관심이 쏠린다.

“분단체제가 87년체제에서 관철되는 방식과 87년체제가 야기한 분단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내적으로 연계해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논지다. 분단체제와 87년체제는 각각 무엇이며, 이 둘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남북한 각각의 체제로 이뤄진 한반도는 일정한 자기재생산 능력을 갖췄지만 내재적으로는 불안정한 하나의 체제(분단체제)로서 세계체제와 조응한다. 분단체제 아래에 존재하는 남북한 각각의 체제는 지배자와 민중 사이의 대립을 주요 모순으로 삼는다. 남북한 각각의 지배층은 서로 적대적이지만 동시에 상호 의존적이다.

87년체제론은 1987년 6월항쟁을 지나며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난 구조적 전환에 주목하는 이론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난항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진전되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보수적 헤게모니의 수립으로 답보와 정체가 지속됐다.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했던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일정 정도 ‘힘의 균형’이 형성된 것이 87년체제의 특징이다.

주목할 지점은 분단체제론과 87년체제론의 교차다. 단단했던 분단체제는 87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냉전의 해체를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단체제 자체는 유지되지만, ‘적대적 상호의존성’의 안정적인 재생산이 불가능해져 의존과 적대 사이를 크게 오가게 됐다. “87년체제의 수립이야말로 분단체제의 동요를 야기한 제1의 요인”이었다. 87년체제의 수립은 분단체제론이라는 이론의 탄생과 확산에도 배경이 됐다. 이런 상호 규정성 속에서 87년체제와 분단체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켤레’의 개념이 된다. 지은이는 둘을 교차시키며 한국 사회의 각 시기별 주요 쟁점들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렌즈를 획득한다.

그렇다면 87년체제와 지난해 일어난 ‘촛불혁명’의 관계는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논의를 빌려, 혁명의 본질은 “새로운 제도적 창설이며 공적인 삶에 참여하고 실현하는 자유”라고 말한다. 촛불혁명의 경우 공적인 자유를 표현하고 경험하는 과정인 것은 확실하나, 현 체제인 87년체제를 밀어내고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고 보긴 힘들다고 한다. 오히려 지은이는 촛불혁명이 ‘외압내진’, 곧 제도 외부의 압력으로 제도 내부의 절차를 작동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런 측면에서 촛불혁명은 “87년체제 아래서 이루어진 가장 뛰어난 정치적 성과 중 하나이며, 87년체제의 극복이 아니라 그것을 수호한 ‘보수적’ 혁명으로서 6월항쟁의 사후완성”이다. 그럼에도 촛불에 ‘혁명’을 붙이는 이유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혁명의 길을 펼쳐보여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촛불혁명이 가져올 ‘제2라운드’를 염두에 둔 풀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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