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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아 살해’에 맞서, 나를 재창조하라

등록 2017-06-15 19:43수정 2017-06-15 20:13

현대 철학 ‘자아 살해’에 반발
하이데거·라캉 비판적 독해
‘에고-분석’의 필요성 제기
자아와 살 -에고-분석 개론
자콥 로고진스키, 이은정 옮김/도서출판 비·2만8000원

서양 철학사에서 르네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반박해보지 않은 사상가가 과연 있었을까? ‘나’(자아)를 주체로 내세운 데카르트의 사유는 근대 형이상학의 뿌리가 되었으나 거듭되는 의심과 도전을 받아야 했고, 현대 서양 철학의 거장들은 한결같이 ‘자아는 없다’고 선언하는 데 이르렀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스승 에드문트 후설의 ‘선험적 자아’ 개념에 반발하여 존재의 앞자리에 ‘세계’를 위치시켰고, 자크 라캉은 ‘거울단계 이론’을 앞세워 자아는 환상에 불과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렇게 사라진 자아의 자리에는 상상이든, 힘의 의지든, 존재든, 언어든, 무의식이든 저마다의 ‘대타자’(X)가 들어섰다.

자콥 로고진스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교수는 현대 서양 철학의 이런 경향을 “에고 살해”(egocide)라고 주장한다. 그가 문제 삼는 ‘나’는 빈 형식으로서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주체’ 개념이 아니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단독적인 자아’로서의 경험이다. <자아와 살>(2006)은 국내에 처음 번역된 그의 단행본으로, 에고 살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시작해 ‘에고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먼저 지은이는 하이데거와 라캉을 ‘에고 살해’의 두 거장으로 꼽고, 그들의 사유가 봉착할 수밖에 없는 난관을 짚는다. 지은이가 볼 때, 모든 것의 근원에 자아가 아닌 대타자를 놓는 ‘에고 살해’ 기획은 끝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타자로부터 분리되거나 대타자를 동일시하는 ‘무엇’이 과연 무엇인지 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모두 지니는 ‘나’라는 절대 확실성이 어디서 오는지, 또 어떻게 환영에 지나지 않는 자아가 더 근원적인 비자아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에고 살해가 첨예해질수록 ‘나’에 대한 물음은 더욱 강력하게 회귀한다.

자콥 로고진스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교수. 국제철학학교 프로그램 최고책임자를 역임했으며, 주로 자크 데리다의 사유와 비판적인 대결을 벌여온 철학자다. 출처 위키미디어
자콥 로고진스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교수. 국제철학학교 프로그램 최고책임자를 역임했으며, 주로 자크 데리다의 사유와 비판적인 대결을 벌여온 철학자다. 출처 위키미디어
하이데거는 ‘나’가 아닌 ‘존재’ 자체를 사유의 주된 기반으로 삼았다. “거기”(Da)에 “있다”(sein)는 말을 합친 ‘다자인’(Da-sein, 현존재 또는 실존자)이 자아 개념을 밀어내고 그의 존재론을 대표했다. 지은이는 하이데거가 ‘다자인’에 자기 자신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한편, ‘거기 던져진 존재’로서 스스로 기반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모순이 있다고 봤다. 하이데거는 ‘자아의 단독성’을 외면한 채 ‘존재의 초월성’이라는 비개별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나는 내 안에 머물지 않고 늘 내 밖에 ‘타자로서만’ 존재할 뿐,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없게 된다. 지은이는 하이데거가 나치즘에 찬동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내 것’으로서 집중했어야 할 ‘다자인’의 단독성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자크 라캉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라캉은 아이가 거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타자에게 동일시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거울단계 이론’을 주창했다. 이런 이론 속에서 자아는 “상상계의 속임수”가 된다. 문제는 ‘누가’ 동일시하느냐다. 라캉은 근원적인 자아의 존재를 인정하길 거부하고, 대신 “빗금 친 주체”, “텅 빈 장소”, “주체 없는 주체화”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자아의 내재성을 부정해버린 뒤 되돌아갈 곳이 없어진 하이데거의 ‘다자인'이 품고 있는 모순과 마찬가지로, 대타자의 존재에 앞서 이미 자기 자신에 자신을 동일시했다고 전제하지 않는다면 주체를 대타자로부터 다시 떼어내겠다는 정신분석학의 목표 자체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다자인’이 실존의 진리에 눈을 뜰 수 있으려면, 주체가 상상계의 환영을 피할 수 있으려면, 근원적인 자아 개념은 불가피하다. 그런 측면에서 지은이는 “‘다자인’이나 정신분석학의 주체의 진리인 X는 바로 에고(자아), 곧 나”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자아를 묻기 위해 다시 데카르트로 돌아간다. “만약 교활한 기만자가 나를 속이는 것이라면,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근원적 자아의 불가피성을 이미 제기했다.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끔’ 하려는 위협에 대한 저항이 최초의 나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있다’를 확인한 뒤에도 문제는 계속 꼬리를 물게 된다. 그렇게 확인된 ‘나’는 과연 연속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존재하는가? 언제나 똑같은 단 하나의 나인가? 자아의 불연속적이고 불안정한 특징은 결국 또다시 대타자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지은이가 ‘참된 자아’, 곧 자아의 근원적 핵심부를 밝히고자 하는 ‘에고-분석’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것이 있었던 곳에 나는 생겨나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명제에 기대어, 지은이는 자아가 끊임없이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목할 대목은 ‘살’, 곧 살아있는 신체의 유동성을 자아 구성의 중요한 기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자아는 내 살 밖에서는 실존하지 않는다. (…) 에고를 구성하는 종합은 ‘살의 종합’이다.” 자아의 끊임없는 ‘재-창조’ 앞에 던져지는 과제는 ‘타자와의 관계’다. 지은이는 내 몸속 내게 알려지지 않은 부분, 곧 “내 안에 있는 타자”를 가리키는 ‘레스탕’(남은 것)이라는 개념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풀이하려 시도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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