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던럽 지음, 엄성수 옮김/비즈니스맵(2016)
문재인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 그런데 모두가 원하는 좋은 일자리는 얼마나 될까? 대기업 및 공공기관 직원, 공무원을 합쳐 약 300만명의 정규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활동 인구의 10% 미만인 희귀한 자리를 두고 취업 준비생들이 몇년씩 매달리는 사회는 괜찮은 건가? 정부가 지금처럼 의지를 갖고 정규직화를 추진하면 ‘좋은 정규직’이 쑥쑥 늘어날까? 기업들은 태도를 바꾸려 할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새로운 빈곤>(천지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복지국가의 안락함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한다. 전후 복지국가를 이룬 합의는 ‘일시적’인 것이며 재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은 인력이 부족했고, 노동윤리를 갖춘 양질의 노동력을 대규모로 재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조직 노동, 전일제, 장기근속을 전제로 한 정규직은 이런 전후의 합의에 조응하는 고용형태다.
그 뒤로 세상은 달라졌다. “오랜 세월의 노동이 축적한 어마어마한 능력 덕택에 수많은 구성원의 개입 없이도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 사회의 엔진은 생산이 아닌 소비인데, 주인인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고용과 노동의 형태도 변해왔다. 수시로 고용하고 해고하며, 직무를 바꾸는 시공간의 유연화가 그것이다. 이런 변화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술변화로 한층 가속하고 있다.
팀 던럽은 <노동의 미래>에서 “우리가 해 온 일과 그 하는 방식이 그 뿌리부터 변하고 있다”며 “이제 풀타임 일의 시대는 끝나고 어떤 마법 같은 순간에 일자리들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헛된 기대 또한 접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한다. 그는 “일이 더 이상 유용하고 신뢰할 만한 부의 재분배 방식이 아닌” 시대의 선택지로 ‘탈 노동’을 제시한다. 이는 일을 하지 않는 미래라기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급여를 받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미래”를 말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 구절에 함축돼 있다.
“더 이상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은 (…) 보다 활발한 사회참여와 지역사회 참여도 가능케 해주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재능을 소득을 올리거나 이익을 내는데 쏟지 않고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세상, (…)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예술과 교육에 많은 시간을 쏟았고 (…) 모든 노동은 노예들에게 맡겼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국 중 하나이고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출산을 포기하는 나라, 복지도 충분치 않은 우리 현실에서 ‘탈 노동’과 ‘기본소득’이란 말이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 인구 구조의 변동에 더해 4차 산업혁명의 기술변화가 일의 성격과 일자리에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기야말로 일에 대한 대화가 필요할 때인지 모른다. 일이 고역이 아니라 행복을 높이는 활동이 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대화 말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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