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길·4만원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조대호 옮김/길·4만원
플라톤과 함께 서양 정신세계의 젖줄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 가운데 하나인 <정치학>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서양 고전 연구자인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10년 동안 원전 번역에 매달린 결과물로, 그동안 학술·출판계에서는 이 중요한 번역서의 출간을 기다려온 바 있다. 그리스 고전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펴고 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앞선 2009년 <정치학>(숲)을 처음으로 원전 번역해낸 바 있으니, 이제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정치학> 번역본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려 3200여개에 달하는 깨알 같은 역주 속에 밴 고민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 전체 저작물 체계를 종합적으로 해설해주는 해제가 이번에 나온 김재홍 판본의 특징이다.
지난 3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재홍 연구원에게 번역에 10년이나 걸린 이유를 물었다. 그는 “서양 고전의 체계적인 원전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환경 속에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서양 고전들을 주로 영어판이나 일어판의 중역으로 읽어왔다. 그리스 철학의 대가로 꼽히는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플라톤 대화편 <국가>(서광사)를 처음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해 펴낸 것이 1997년의 일이다. 원전 번역이 활성화된 지 이제 20여년 정도가 된 셈이다. 정암학당에서는 2007년부터 ‘플라톤 전집’을 목표로 번역본들을 펴내기 시작했는데, 여태까지 27권이 나온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흉상. 기원전 330년께 그리스인 리시포스가 만든 것을 로마 시대에 다시 만든 작품으로 알려졌다. 출처 위키미디어
김 연구원은 “원전 번역, 특히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고전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원전을 정확히 번역하고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했기에, “열매만 따다가 입에 넣으려 했을 뿐 열매가 형성되기 위한 뿌리와 토양에는 무심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은 그런 뿌리와 토양을 다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1997년 정암학당 동료들과 <정치학>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는 김 연구원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으로 윤독하며 단어 하나, 어휘 하나의 뜻을 제대로 새기고, 서로 비판하고 토론했던 과정들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원문의 뜻을 천착하고 새기며 읽어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과연 어떤 책인가? 김 연구원은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가장 큰 특징은 윤리학과 정치학을 하나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인간’을 목적으로 삼는 윤리학이 개인의 행복을 다룬다면 ‘좋은 폴리스’를 목적으로 삼는 정치학은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다루는 학문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견지했던 학문의 전체적인 분류 체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을 ‘안다’(이론적), ‘행한다’(실천적), ‘만든다’(제작적) 세 가지로 보고 학문 체계도 이에 따라 분류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행위’, 곧 실천과 관련된 학문이었다. 정치학과 윤리학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원전 번역한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지난 3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책 출간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원전 번역한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지난 3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책 출간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실천적 학문의 목적은 “이론적인 고찰이 아니라 탁월성(덕)을 소유하고 활용하도록 노력하고 훌륭하게(agathos) 되는 것”이다. 탁월성은 이론이 아니라 반복적인 ‘습관’의 결과로 얻어질 수 있으며, 그런 습관은 ‘법’에 의해 이끌어진다. 그런데 법은 정치가나 입법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정치와 입법에서는 “공동체 속에서 남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게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 곧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요구된다. 이런 사유의 단계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종적으로 국가가 각자의 정치 체제에 맞춰 시민들로 하여금 덕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왕정과 귀족정, 혼합정 등을 검토하며 이를 위한 최선의 정치 체제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김 연구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핵심적으로 붙들어야 할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좋은 시민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과 관련해,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교육의 주체가 꼭 국가일 필요는 없으며, 다양한 방식의 교육이 가능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 하는 내용적 측면일 것”이라고 했다. 최선의 정치 체제에 대한 논의와 관련해서는 “특정 정치 체제가 최선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덕을 갖춘 시민, ‘다수가 다수를 지배한다’는 개념,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삼아 ‘번갈아 지배’해야 할 필요성 등의 생각들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등성’(평등)을 강조한 대목을 끌어온다면,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개념까지도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는, 훈련을 통해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과거 한 몸이었던 정치학과 윤리학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보듯 근대에 들어서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때문에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도덕을 갖추지 못한 정치 지도자’들을 경험했었죠. 무엇보다 시민 스스로 훈련을 통해 ‘실천적 지혜’를 갖추고,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해 광화문의 촛불은 바로 그런 훈련의 장이었죠.”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원전 번역한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지난 3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책 출간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을 원전 번역한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지난 3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책 출간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년에 걸쳐 숙원을 이룬 김 연구원은 다음 작업으로 <분석론> 전·후서의 번역에 매달릴 예정이다. 올해 말 <파르메니데스> 등이 나오면 정암학당판 ‘플라톤 전집’은 일단 마무리가 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은 아직 번역할 것이 꽤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전체 저작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생물학’ 분야는 불모지로 꼽힌다.
“중국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서양 고전들의 전집 번역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고전 번역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한편 이번에 <정치학>과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도 함께 나왔다. 조대호 연세대 교수가 2012년 나남출판사에서 두 권짜리로 냈던 것을, 한 권으로 묶어서 개정 출간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