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물질문화
쑨지 지음, 홍승직 옮김/알마·3만5000원
“한나라 기와에 대해 고고학자가 무언가 발표를 하면, <사기>나 <한서>는 제대로 읽기나 했느냐고 역사학자가 핀잔을 준다. 항우가 20만 진나라 병사를 생매장했다고 역사학자가 말하면, 20만 명을 생매장하려면 얼마나 넓은 땅을 얼마나 깊이 파야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고고학자가 핀잔을 준다.”
<중국 물질문화사>를 우리말로 옮긴 홍승직 순천향대 교수(중국학과)가 후기에 쓴 대목이다. 과거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는 둘 다 필요하지만, 학문 체계의 분화로 둘 사이의 협력이 쉽지 않은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쑨지(88)는 문헌과 문물을 함께 읽어낼 줄 아는, 곧 역사학과 고고학을 아우르는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중국국가박물관에서 했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중국 문명이라면 흔히 정신문화를 떠올리기 쉽지만, 동아시아 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끼친 물질문명의 성취를 간과할 수 없다. 지은이는 “물질문화의 성취는 생산과 생활수준의 척도이자, 한 국가가 여러 분야에 걸쳐서 이룩한 성취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중국 안양에서 출토된 상나라 때의 수레를 복원한 그림. 알마 제공.
먼저 한 문명의 식생활을 좌우하는 ‘농업과 음식’ 분야. 중국에서 원시적인 수준의 농업이 시작된 것은 1만여 년 전부터라 한다. 소로 쟁기를 끌어 땅을 가는 것은 춘추 시대에 등장했으나, 동한 시기에 와서야 보편적인 경작 방식이 됐다. 고대부터 명나라 전기까지 양식 작물의 품종은 대체로 엇비슷했으나, 명나라 후기에 신대륙으로부터 옥수수와 감자가 들어오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이들 작물은 한동안 정체였던 중국의 급속한 인구 증가를 부채질하는 배경이 됐다고 한다.
중국 식문화에서 술과 차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상나라 때 누룩으로 빚은 곡주가 등장했다. 흔히 주둥이가 뾰족한 ‘작’이란 술잔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는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고 술을 땅에 뿌리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증류주는 원나라 때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차는 술보다 늦게 등장했는데, 당나라 때에 차 마시는 기풍이 남북으로 널리 퍼졌다. <차경>을 써서 ‘차신’으로도 추앙받는 육우가 이 시기에 활동한 문인이다.
중국 고대의 수레는 기원전 수천년 전부터 매우 우수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고 한다. 고고학적으로도 하(夏)나라 때 이미 수레가 있었으며, 전차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 증명된다. 당시 서양의 옛 수레는 수레를 끄는 짐승의 호흡과 관련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중국 강소성, 호남성, 북경 등에서 출토된 찻잔과 잔받침. 알마 제공.
이밖에도 지은이는 앉는 자세의 변천에 따라 실내의 가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 복식, 건축, 야금, 문구, 악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박물 지식’을 펼쳐낸다. 인쇄술을 중국의 ‘4대 발명’으로 꼽으면서도, 조선의 구리활자를 금속활자의 시초로 추켜올리며 “교류, 흡수, 융합, 발전을 통해 문화의 모습이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워진다”고도 말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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