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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모두 모여서 피케티를 완성하라

등록 2017-11-30 19:41수정 2017-11-30 20:07

‘피케티 현상’ 일어난 지 3년
‘피케티 이후’를 살피는 기획
각계 25명 학자들 갑론을박
불평등 세계 바꿔나갈 희망
애프터 피케티-<21세기 자본> 이후 3년
토마 피케티 외 25명 지음, 유엔제이 옮김
/율리시즈·3만8000원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영문판권을 획득한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의 편집장 이언 맬컴은 이 책이 “2~3년 동안 20만권쯤” 팔릴 것으로 예상했다. 출판부장 윌리엄 시슬러의 기대는 그보다도 낮았다. “운이 좋다면 1만~2만권”이었다. 방대한 통계와 도표로 가득한, 무려 700쪽이 넘는 경제학 책에 대한 기대는 애초 그 정도였다.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2014년 처음 출간된 뒤 3년 동안 30개국 이상에서 220만부가 넘게 팔렸다. 책이 일으킨 반향은 그런 경이로운 판매부수마저 뛰어넘었다. 피케티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급부상했고, 책의 주제인 ‘부의 불평등’은 21세기 최고의 화두가 됐다. 대학 캠퍼스에는 피케티가 제시한 ‘r>g’(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 공식이 새겨진 티셔츠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피케티 현상’이다.

2014년 미국 하버드대 서점에서 강연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지은이 토마 피케티. 부의 집중과 불평등 현실을 지적한 이 책은 세계적인 반향과 비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4년 미국 하버드대 서점에서 강연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지은이 토마 피케티. 부의 집중과 불평등 현실을 지적한 이 책은 세계적인 반향과 비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피케티가 던진 화두는 경제학계를 넘어 각계의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인 경향이라는 그의 주장이, 오늘날 핵심적인 어떤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하버드대는 프로젝트를 꾸렸다. <21세기 자본>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에게 검증과 평가를 요청한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올해 출간되어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본이 나온 <애프터 피케티>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브래드퍼드 들롱, 헤더 부셰이, 마셜 스테인바움은 이 책의 서문에서 “피케티는 옳은가?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만큼 불평등이 중요한가? 결론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밝혔다. 로버트 솔로, 폴 크루그먼, 마이클 스펜스, 에마뉘엘 사에즈, 브랑코 밀라노비치 등 유명 학자 21명이 참여했다.

지은이들은 ‘비판을 위한 비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다만 피케티가 제시한 화두를 더욱 풍성한 논쟁으로 끌어올리는 데 열중했다. 먼저 글의 제목을 “피케티가 옳다”고 붙이는 등 피케티를 적극 응원하는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와 폴 크루그먼이 <21세기 자본>의 주된 논지와 그 의미를 해설한다. 피케티는 300여년에 걸친 서양 주요국들의 자본/소득비율을 천착해, 부의 불평등이 크게 U자를 그리며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실증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r>g)는 일반적인 경향성을 발견해냈다. 이런 경향 속에 상속재산의 위력이 점점 커져 ‘세습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부유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본격적인 내용을 담은 2부가 시작되면, 나름의 영역에서 피케티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주장들이 줄을 선다. 이들은 피케티의 문제의식과 연구방향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가차 없이 지적하고 채워 넣는다. 특히 자주 드러나는 비판 가운데 하나는, 피케티의 작업 속에 ‘정치경제학’에 기반한 접근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공식 자체를 넘어,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해주는 ‘동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식이다.

<21세기 자본> 영문판 표지.
<21세기 자본> 영문판 표지.

경제학자 수레시 나이두(5장 ‘정치경제학 관점에서 본 W/Y’)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는 피케티의 작업을, 신고전주의 시스템에 기댄 ‘길들여진’ 모형과 여기에서 벗어난 ‘야생의’ 모형으로 구분했다. 길들여진 모형은 “긍정적이고 수량화할 수 있는 경제 모형과 검증 가능한 예측들을 잘 정의된 사회적 목표함수의 맥락에서 결합”시켰으나, 여기에는 제도와 정치가 빠져 있다. 반면 야생의 모형은 “자본이란 오늘의 소득을 미래 소득에 대한 안전한 권리로 바꾸는 연금술이며, 이런 권리가 자산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경제를 바라본다. 이를 통해서야 기업의 지배구조, 금융기관의 역할, 노동시장 제도, 정치적 영향력 등이 부의 분배에 영향을 끼치는 맥락이 포착될 수 있다. 나이두는 “<21세기 자본>에는 정치체계가 불평등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약간의 언급이 있지만 불평등이 어떻게 정치체계를 바꾸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큰 구멍”이라고 비판한다. 정치와 제도와 경제 영역의 불평등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철학자인 데이비드 싱 그레월(19장 ‘자본주의의 법적 기초)은 법률을 통해 자본주의의 법칙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면서 ‘자본의 지속적인 우위’를 야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법적 기반을 지적하는데, 이 역시 피케티의 논의 속에선 부족했던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본이 신고전주의적 관점처럼 단순히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집합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며, 자본주의가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법률적 체제라는 점을 다시 일깨운다. 또 전후 시기 불평등이 줄어드는 등 ‘자본주의의 핵심적 모순’이 일시적으로 극복되었다면,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의 비판 역시 피케티가 실증적으로 밝혀낸 ‘경제’의 현상 이면에 있는 제도적 구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환기한다. 각기 다른 사회체제에 따른 불평등의 변화 양상을 묻는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10장 ‘자본소득 증가가 개인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 <21세기 자본>이 소홀히 다룬 ‘공간’의 문제를 제기하는 지리학자 개러스 존스(12장 ‘<21세기 자본>의 지리학’) 등의 논의들도, 크게 보면 자본주의 체제 속 불평등 현상의 기저에 깔린 ‘구조’에 대한 천착을 요구하는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자본> 한국어판 표지.
<21세기 자본> 한국어판 표지.

정보경제학 분야의 석학인 마이클 스펜스와 로라 타이슨은 8장 ‘기술이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서 “에릭 브리뇰프슨과 앤드루 매캐피의 저서 <제2의 기계시대>가 지난 수십년 동안의 부와 소득의 분배 동향을 이해하고 향후 수십년에 걸친 동향을 예측하는 데 있어 <21세기 자본>만큼 중요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피케티의 이론은 자본·노동·기술에 기대어 산출량을 따지는 일반적 생산함수에 의지하는데, 브리뇰프슨과 매캐피의 논의를 참조하면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자본’의 특성은 이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앞으로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더 잘 대체할수록 불평등의 양상은 어떻게 급격하게 변화할지, 어떤 대안이 필요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이밖에도 페미니즘 경제학자 헤더 부셰이가 피케티의 논의를 여성주의 경제학의 관점으로 평가(15장 ‘세습자본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의 해석’)하기도 하고, 피케티의 모호한 ‘자본’ 개념에 대해 경제학자 에릭 닐슨이 대거리(7장 ‘<21세기 자본> 전후의 인적자원과 부’)를 벌이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엔 이처럼 다양한 비판에 대한 피케티의 응답(22장 ‘경제학과 사회과학의 화합을 향해’)이 실려 있다. 피케티는 각각의 비판들을 하나씩 되새기며 성실하게 대응하는데, 무엇보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 자본>에서 제시한 건조하고 실증적인 연구들이 어떤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만 풀이될 가능성에 대한 경계로 읽힌다. 그 대신 그는 “불평등의 역사는 연관된 모든 행위자가 함께 만든 합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신념 체계와 불평등 체제 사이의 상호작용에 따라 우리의 미래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것이다. 만약 <21세기 자본> 속에서 ‘길들여진’ 피케티만 본다면, 우리는 결코 불평등을 제거할 수 없는 암울한 미래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프터 피케티>가 보여주듯, 우리 모두는 스스로 운명을 바꿔나가는 ‘야생의’ 피케티가 될 수도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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