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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치적 사랑’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글턴의 윤리학

등록 2018-01-18 19:58수정 2018-01-18 20:13

형이상학 몰두한 마르크스주의자
라캉 이론으로 본 서구 윤리 담론
마르크스주의·기독교 토대로
윤리 구현할 정치의 가능성 논의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윤리학 연구
테리 이글턴 지음, 김준환 옮김/길·3만5000원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75)은 2000년대 이후 신이나 진리, 정의, 비극 등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을 깊이 파고드는 글쓰기를 줄곧 이어왔다. <성스러운 테러>(2005), <신을 옹호하다>(2009), <악>(2010) 등이 대표적인데, 이런 계통의 저작들에서 이글턴은 자신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마르크스주의와 자신의 정신적 요람이랄 수 있는 가톨릭 신학을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항상적인 이정표, 또는 “배경음악”으로 삼는다. 이런 전략 아래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가톨릭 신학, 서구 지성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풍성한 문학비평, 냉소와 유머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글턴만의 독특한 형이상학 담론이 나온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2008)에서 이글턴은 윤리학의 문제에 집중하는데, 여기에서도 이런 독특한 글쓰기 전략은 여전하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글턴에게 윤리학은 단순하게 말해 ‘낯선 사람’, 곧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자리매김시킬 것이냐는 인식론적·존재론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가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주된 방법론으로 끌어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라캉은 아이가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부터 자신을 인식하는 ‘거울단계’에 착안, 주체가 대상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상상계·상징계·실재계로 나눈 바 있다. 책에서 이글턴은 서구 근현대의 다양한 윤리 관련 이론들을 상상계·상징계·실재계라는 이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해 풀이하려 시도한다. 무엇보다도 18세기 이래 서구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 속에서 윤리 담론이 상상계에서부터 상징계를 거쳐 실재계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강연 중인 영국 출신 좌파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모습. 출처 플리커
강연 중인 영국 출신 좌파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모습. 출처 플리커

먼저 이글턴은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나왔던 윤리 담론들을 살피고, 이들은 ‘상상계적 윤리’로 범주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흄, 프랜시스 허치슨, 에드먼드 버크, 애덤 스미스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윤리 담론들은 저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인간에겐 타고난 ‘도덕감각’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타자에 대한 즉자적인 공감과 이해가 가능하다고 봤다는 점에서 비슷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타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고 육신을 느낄 수 있는 존재, 라캉의 ‘거울단계’가 보여주듯 ‘나’로 미루어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런 상상계적 질서는 자아와 그 대상으로만 구성된 닫힌 영역이며, 감상과 감성이 그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주체는 자기애적 대상과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상상계에서 벗어나 상징계로 옮아가야 하며, “자신의 거울이 아닌 ‘차이의 유희’로부터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제 직접적인 공감과 정감이 아니라, 언어와 보편법 등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인 ‘질서’가 중요해진다. 상상계에서 얼굴을 맞댄 사람들 사이에 가능했던 직접적인 상호성은 누군지 알 수 없는 ‘낯선 사람’과 맺어야 하는 상호 주체성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글턴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스피노자와 도덕법을 중심으로 윤리를 새로 정초하려 했던 칸트의 사유 등을 ‘상징계적 윤리’라고 본다.

2010년 방한했을 때 테리 이글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2010년 방한했을 때 테리 이글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라캉 이론에서도 가장 난해한 대목으로 손꼽히는 실재계에 대한 논의는 이글턴의 윤리학에서도 중심부를 차지한다. 이글턴은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니체로부터 시작해 레비나스, 데리다, 바디우 등 현대철학자들에까지 이어지는 윤리 담론들을 통해 ‘실재계적 윤리’를 논한다. 이들의 사유가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상상계적·상징계적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 윤리 담론들이 어떤 변증법을 거쳐 얼마나 다양하게 튀어나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실재계는 단지 ‘역사적 현실’의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징계적 질서의 내부 균열 지점”으로 “현실이 완전히 형식화되었을 때 남는 잉여 혹은 잔여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주체가 자기 스스로와 하나 되지 못하는 실패의 지점이 실재계인데, 역설적으로 우리는 오직 이곳에서만 우리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를 풀 단초를 발견해낼 수 있다.

강연 중인 영국 출신 좌파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강연 중인 영국 출신 좌파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실재계에 대한 논의에서 이글턴은 윤리의 중심에 ‘욕망’을 놓는 라캉의 윤리학을 밑바탕에 깔고, 기독교의 윤리와 사회주의적 기획을 비판적으로 절합시킨다. 라캉에게 도덕은 선한 것, 공리적인 것, 덕 있는 것, 쾌락적인 것 등 온갖 ‘아버지의 법’ 곧 상징계적 질서를 넘어서는 것이며, 그 때문에 ‘욕망’에 충실한 것에서 새로운 윤리적 기초를 찾으려 했다. 반면 이글턴은 ‘자신의 욕망을 고수하라’는 라캉의 표어에 일부 수긍하면서도, “윤리는 욕망이 아닌 사랑에 대한 것”이라며 ‘욕망’을 ‘사랑’으로 바꿀 가능성을 찾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랑은, 당연히도 에로스가 아니라 “타자성을 지닌 이웃”에 대한 비인격적 사랑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종교는 주체와 대타자 사이의 비극적 균열을 극복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것은 “각자의 성취가 모두의 성취를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실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윤리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윤리는 정치와 구분되지 않으며, 윤리를 구현하지 못하는 정치 체제와 싸워 이겨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실천적 주제가 된다. “윤리적인 것은 어떻게 우리가 보람 있게 서로 함께 사는가에 대한 사안이며 정치적인 것은 어떤 제도들이 이 목적을 가장 잘 촉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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