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엘리·1만4000원 <퇴사하겠습니다>로 알려진 신문기자 출신 지은이의 후속작. 전작에서도 일정 부분 할애했던 ‘비워가는 생활’에 초점을 맞춰 쓴 에세이다. 최근 많이 출간되는 ‘미니멀 라이프’ 예찬이기도 한데 그의 미니멀 라이프 시작 지점이 독특하다. “출발점은 원자력발전소 사고였다. 그 참사를 지켜보면서, 원자력발전소 없이도 우린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절전을 시작했다.” 현직 언론인으로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접한 지은이는 불안을 넘어, 복잡한 감정에 맞닥뜨렸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이 사태는 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어쩌면 혹시 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전기요금 반으로 줄이기를 목표로, 가지고 있던 전자제품들의 코드를 빼기 시작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같던 티브이(TV) 전원을 끄니 쓸쓸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청소기, 전자 레인지 등 실제 용도와 대안을 고민하며 버리기 시작하자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청소기 대신 가벼운 빗자루를 드니 청소가 쉬워졌고 해동용으로만 쓰던 전자 레인지를 치우니 집이 넓어졌다. 수족을 끊는 기분이던 전자제품 버리기는 다른 삶을 발견하는, 예상치 못했던 기쁨을 선사했다. 그 기쁨은 냉장고와 겨울철 난방용품 버리기까지 도전을 자극했다. 지은이는 간소한 삶으로 가는 길을 마치 게임 레벨을 올리는 것처럼 흥미롭게 기술했다. 냉장고와 난방용품을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지난해 따라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의 조건을 ‘에도시대’ 즉 자연이 모든 걸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미묘한 날씨와 절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되는 과정은 마치 잠자고 있던 온몸의 세포들이 깨어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도전해보고 싶은 맘이 들 정도로.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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