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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증자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욕망했던가

등록 2018-02-08 19:50수정 2018-02-08 20:14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소크라테스, 욕망의 철학적 기원에 관하여
백상현 지음/에디투스·1만3000원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욕망에 관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말했을 때, 이 말에는 주체의 지위와 관련된 어떤 핵심적인 주제가 담겨 있었습니다.”

자크 라캉은 1960년대에 열었던 세미나들에서 서구 철학의 기원으로 꼽히는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히스테리증자’로 풀이한다. 혼자 ‘예언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에게나 말싸움을 걸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끝내 사형당한 이 인물은, 정신분석학자들에게 흥미로운 분석의 대상일지 모른다.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삼아 자신만의 사유를 펴온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백상현(사진)은 새로 펴낸 책 <나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다>에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을 통해 철학의 근본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지은이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서구 철학의 기원적 욕망의 구조를 탐사하는 일종의 ‘철학적 욕망의 고고학’을 시도했다”고 밝힌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출처 플리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출처 플리커.

먼저 지은이는 소크라테스가 보인 병적인 욕망과 이를 억압하는 아테나의 법 사이의 대립에 주목한다. ‘무지에 대한 지혜’(공백에 대한 욕망)를 앞세워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인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히스테리증자의 전형에 다름 아니다. 반면 공동체의 균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소크라테스를 기소하고 더 나아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아테나의 법은 강박증의 특성을 보인다.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의 억압 위에 서 있는 신경증자이며, 그 증상은 억압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강박증과 억압의 실패를 반복하는 히스테리증 사이를 오간다. 이런 정신분석의 틀을 끌어오면, 단지 말싸움 좋아하는 노인을 기어이 사형까지 시켰을 정도로 강박증적인 이 ‘세계-권력’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측면에서 “철학은 ‘세계-권력’의 정신병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또다른 정신병적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백상현. 에디투스 제공.
정신분석학자 백상현. 에디투스 제공.

핵심적인 대목은 이런 대립구도의 제시 뒤에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욕망 자체에 대한 풀이다. ‘세계-권력’에 대항한 소수자로서 소크라테스의 탈주가 단지 ‘절대적인 차이’를 낳는 데에만 그쳤다면, 그의 욕망은 보편의 장소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지 개별자의 망상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마지막 장은 소크라테스의 공백에 대한 욕망이 플라톤에게 양도되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반복해 나타나는 모습을 짚는다. 지은이는 이렇게 보편의 장소를 획득한 소크라테스의 욕망이 바로 철학의 고유한 욕망의 기원이라고 본다. 고정관념에 의해 주어진 욕망이 반복되는 것에 저항하려는 욕망의 반복이 바로 철학적 욕망의 구조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철학이란 것은 복잡한 텍스트의 전개와 사변적 이론의 나열, 지식의 전수 따위가 아니라 “꼰대들의 담론에 욕설을 퍼붓는 일종의 하드코어 랩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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