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샹탈 라페르데메종 지음, 류재화 옮김/마음산책·1만5000원 “매혹은 언어의 사각지대에 대한 인식”. 은밀하고 매혹적인 문장의 독보,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인터뷰집이 나왔다. 작품으로만 키냐르를 만나온 한국 독자는 이제 그의 말맛도 즐길 수 있게 됐다. <파스칼 키냐르의 말>은 프랑스 아르투아대 교수 샹탈 라페르데메종이 키냐르와 나눈 대화록이다. 라페르데메종의 질문은 문학, 언어, 철학, 신화, 음악 등 키냐르가 넘나다니는 장르를 풍부한 인용과 함께 종횡무진한다. 키냐르는 “언어는 획득한 것이기에 버릴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옮긴이의 말, 류재화). 언어를 버리는 방법으로, 불을 지르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는 휘황한 에너지가 꼭 불꽃 같다. 그 빈자리에 “말하기 이전의 것, 표현할 수 없는 것, 조용한 것, 음악적인 것”이 다가와 마침내 ‘장르가 부재하는’ 글쓰기가 태어난다. 총 248쪽의 인터뷰는 저 ‘다가온 것’의 모든 풍경이다. “의미 너머에는 다가오면서 다가온 것이 있어요. 시간은 그런 겁니다. 예술과 사랑이 만들어내는 여태 한 번도 없었던 당도. 당도하는 당도. 그게 아름다움입니다.” 1948년 언어학자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말하지 않는 아이’로 보낸 시절과 첼로와 오르간을 다루던 성장기, 언어의 기원을 파고들다 만들어진 “수직의 절벽” 같은, “아연실색하게 하는 글쓰기”(미셸 드기)의 여정을 직접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키냐르 취향 사전’이다. “꿈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근원에 가장 가까운 예술”인 영화, “예술의 상류에 있는 예술”로서 춤, 이 모든 것보다 사랑하는 꽃…. 언어를 연소시킨 에너지가 삶을 어떻게 데우는지 보았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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