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틀안에 갇힌 신춘문예

등록 2005-12-08 19:17수정 2005-12-09 13:59

최재봉 기자
최재봉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따르릉­.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린다. 문학 담당 기자를 찾는다. 깊은 동굴처럼 착 가라앉은, 그러나 동시에 가라앉은 공기를 흔드는 모종의 떨림과 흥분이 감지되는 목소리. 신춘문예 마감일을 묻는다. 예상했던 대로다.

“죄송합니다. 저희 신문은 신춘문예를 하지 않습니다.”

이내 실망한 기색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마도 다른 신문사쪽 사정을 알아 보리라. 안 보아도 눈에 선하다. 몇 날 밤을 새운 듯 초췌한 몰골에 눈빛만 형형히 빛나는 모습이.

전화를 걸어 오는 쪽은 그나마 양반이다. 다짜고짜 투고부터 하고 보는 경우도 다반사다. 컴퓨터 출력 원고가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낡은’ 원고지에 정서한 것도 드물지 않다. ‘한겨레일보’라고, 신문사 이름을 새로 지어 보내는 이도 있다.

그렇다. 바야흐로 신춘문예 시즌인 것이다.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들의 드문 ‘대목.’ 조숙한 초딩부터 칠순의 어르신들까지 한 마음이 되어 무언가에 열중하는 무렵. 갈수록 뚜렷해지는 왜소화와 주변부화의 운명을 딛고 문학이 1년에 한 번은 대중의 관심과 매체의 포커스를 되찾는 시기. 칠판 앞으로 불려 나와 뜻밖의 칭찬을 받는 학동처럼 과분하게, 흐린 화면으로 다시 보는 옛 영화 속 청춘의 한때처럼 아련하게,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력을 회복하는 노인처럼 기적적으로.

그런데, 도대체 신춘문예가 무엇이관데 이토록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가히 전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대접과 관심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신춘문예가 비롯된 것은 1914년 12월10일치 <매일신보>의 ‘신년문예모집’ 공고에서부터였다. ‘신춘문예’라는 용어가 처음 출현한 것은 1920년 역시 <매일신보>에서였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신춘문예를 시작한 것은 각각 1925년과 1928년이었다. 이후 새로 창간되는 종합일간지가 신춘문예 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여기서 우선 알 수 있는 것은 신춘문예 제도가 일제강점기에 생겨났으며 일본 문단의 선례를 좇은 결과라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도 이 제도를 폐기한 지 오래되었으며, 따라서 세계적으로 신춘문예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만 하고 있으니 자랑스럽다거나, 반대로 부끄럽다거나 하는 차원의 말이 아니다. 신춘문예라는 것이 신인 발굴의 유일하거나 지배적인 방식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유독 신춘문예 제도가 번성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중 흥미로운 관찰의 하나는 이것이 왕조시대의 ‘고시’ 격인 과거제도와 닮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춘문예 당선을 과거에서의 장원급제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실제로는 다양한 등단 형식의 하나일 뿐이며 ‘문학’의 이름으로 자신의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자격증을 부여받는 절차일 뿐인데도 말이다. 해마다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오는 새 얼굴들 가운데 ‘살아남는’ 비율은 극히 낮다. 진짜 경쟁은 등단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다고 보아야 옳다.

신춘문예의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이른바 ‘신춘문예용’이라는 천편일률적 작풍을 조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문학을 얇고 좁게 만들 가능성이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보면 그게 그것 같고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작품들이 허다하다. 신춘문예가 일종의 ‘틀’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자연히 문학적 갱신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신춘문예가 사회적 축제로서의 긍정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문학적 순기능을 되찾을 방도를 궁리할 때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