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 정진백(64)씨가 최근 <김대중 대화록> 전집 5권과 선집 1권을 동시에 펴냈다. 정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9주기를 맞아 그의 사상과 철학이 오롯이 녹아든 대화들을 책으로 묶었다. 책에 담긴 대화는 고백, 대담, 면담, 강연 등 여러 형식이다. 대화 상대로는 당대의 지도자부터 석학, 기자, 시민, 학생 등이 두루 등장한다.
정씨는 “여태껏 우리는 그의 헌신과 공로를 누리면서도 올바르게 기억하는 데는 등한했다. 현장감이 살아있고 대중의 언어로 전하는 대화록이야말로 그의 깊고 넓은 내면에 다가서는 최적의 길잡이”라고 말했다.
대화록 전집은 수집한 내용이 워낙 방대해 3320쪽 5권으로 구성됐다. 이 안에는 원고지 1만5000장 분량의 대화 170편이 담겼다. 1971년 4월29일 <동아일보> 인터뷰부터 2009년 5월21일 한국외대 강연까지 자료들을 낱낱이 모았다.
선집(664쪽)은 24편을 엄선해 실었다. 일본 <세카이> 전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가 1973년과 1983년 두 차례 진행한 대담에서는 정치적 암흑기에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정치학자 로버트 스칼라피노 등과의 대화도 한반도 평화 구상의 기반을 가늠하게 한다.
정씨는 “한 해 동안 사료를 모았다. 원고를 쓴 뒤 일곱 차례 읽고 지명 인명 용어 등을 바로잡고 통일하느라 8개월을 보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내내 그의 육성을 듣는 듯해 행복했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적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의 대화는 시대의 고민과 해법을 담고 있다. 평화와 인권의 새 길로 나서는 우리한테 무진장의 보고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화록 출간과 동시에 전남 화순에 김대중기념공간을 열었다. 이곳에서 초상화·유품·어록 등 소장자료 150여점을 전시하고 관련 도서 2만권을 기반으로 학술연구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신계승을 위해 김대중 다큐멘터리를 교육판(50분) 극장판(2시간) 심화판(5시간) 등 세 종류로 제작 중이다. 오는 18~26일엔 서울시청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전시회를 마련한다.
그는 81년 도서출판 남풍을 설립한 뒤 월간 <사회평론> <사회문화리뷰> <아시아문화> 등을 창간하는 등 출판인으로 활동해왔다. 그가 엮어낸 <조국은 하나다-김남주 옥중시집> <청화 큰스님 어록> <분단시 선집> 등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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