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질문을 바꾸니 다산 앞선 ‘실학자 이덕리’ 보였어요”

등록 2018-11-27 19:05수정 2018-11-29 14:27

[짬] 고전문학 전문가 정민 한양대 교수

지난 26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26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글항아리 펴냄).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펴낸 책이다. 책은 12년 전 저자가 전남 강진군 백운동 이효천(2012년 작고) 선생 댁에서 <강심>이란 이름의 필사본을 보면서 시작된다. 고서를 들추니 다산 저술로 알려진 <동다기>가 있었다. 당시 상비약 용도로만 쓰이던 차를 국가가 나서 생산·수출해 국부를 창출하자는 주장이 담긴 글이다.

정 교수는 바로 이 실학 저술의 지은이와 집필 배경을 밝히는, 힘들지만 흥미진진한 게임에 돌입했다. 그 뒤 강진 지역만 20차례나 찾았단다. 이런 노력 끝에 진도 유배지 골방에서 국가 경영에 관한 구상을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남긴 실학자 이덕리(1725~1797)의 실체가 드러났다. 26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이덕리 집안은 정조 즉위 직후 형 이덕사의 상소 사건으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상소문에 갓 왕위에 오른 정조는 대노했다. 이덕사는 능지처참 형을 당했고 이덕리와 그의 세 아들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덕리는 죽을 때까지 진도와 영암에서 21년 유배살이를 했다.

강진 고택에서 필사본 ‘동다기’ 발견
12년간 20여차례 답사 ‘원저자’ 확인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펴내

정조 초기 멸문당해 진도·영암 유배
국방정책론 ‘상두지’도 이덕리 저술로
“초의 등 ‘차문화 신화’ 거품 거둘 터”

최근 펴낸 정민 교수의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표지.
최근 펴낸 정민 교수의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 표지.
정 교수는 <동다기>를 쓴 이덕리가 역시 다산의 저술로 오인됐던 국방 관련 책 <상두지>도 썼음을 밝혔다. 이 책은 변방의 방어는 물론 화포 등 무기 체계까지 논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덕리는 두 책에서 국가가 차 전매로 큰돈을 벌어 국방 강화에 써야 한다는 논지를 편 것이다. 정 교수의 이번 책은 이덕리와 <동다기>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상두지>는 별도로 내년 초에 책으로 내려고 해요. 대학원생들과 60% 정도 번역을 마친 상태입니다.”

그에게 실학자 이덕리 저술의 의미를 물었다. “<상두지>는 무기 등 국방 하드웨어를 다뤘어요. 당시 조선엔 이런 책이 별로 없었어요. 이덕리는 독특한 위상을 지닌 실학자죠.” 차로 국부를 키우자는 제안의 유효성은? “타당한 아이디어죠. 당시 차의 최대 소비처는 몽골이나 만주 유목 민족이었죠. 유목민들은 유제품이나 고기를 먹어 차로 혈관의 기름을 빼줘야 합니다. 중국 강남 지방의 차가 톈산 산맥을 거쳐 몽골로 갔어요. 이덕리 제안처럼 조선 차를 배로 의주에 보내 (청나라와 공무역을 하던) 북관개시에서 북방 민족에게 팔았다면 큰 이익을 냈겠죠.” 이덕리는 책을 쓰면서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다. 죄인 신분 때문에 이름을 감췄을 것이라는 게 정 교수 해석이다. <동다기>는 초의가 차에 대해 쓴 시 <동다송> 주석에 그 내용이 포함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덕리의 제안이 당시에는 묻혔지만 역설적으로 일제 강점기 때 빛을 봅니다. 일제가 전남 보성 지역에서 떡차 4만개를 만들어 몽골 지역에 주둔하던 일본군에 보냈어요. 처음으로 차를 수출했죠.”

정 교수는 2011년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펴냄)란 책도 냈다. 그때만 해도 차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고 이효천 선생 댁에서 <강심>과 함께 다산 편지를 보면서다. 편지엔 떡차 제조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정 교수는 이를 근거로 당시 차 문화는 잎차가 아닌 떡차 중심이었다는 주장을 했다. 한국 차 문화의 원류로 불리는 초의에게 다산이 차 제조법을 가르쳤다고도 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스무 통 정도에 떡차란 말이 나와요. 당시 떡차를 마셨다는 증거를 100개도 더 댈 수 있어요.” 이런 주장에 반발이 거셌다. 사찰에서 맥을 이어온 잎차가 한국차의 중심인데 정 교수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계의 젊은 연구자들은 지금 내 주장에 동의해요. 차계 원로들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 요즘은 ‘당시 떡차 말고 잎차도 있었다고 말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초의를 다룬 책도 곧 낼 계획이다. “초의 신화에 거품이 있어요. 논거를 가지고 거품을 걷어내려고 합니다. 차계에선 예민하게 반응하겠죠.”

그는 고전문학계의 베스트셀러 저술가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2006년)은 17만 권 이상 팔렸다. 요즘도 해마다 500~1000권 가량 나간단다. 7년 전 나온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는 만권 가량 팔렸다. “요즘 나온 책들은 3천 권도 안 나가는 것 같아요.” 대중강연은 공부 시간을 많이 빼앗는다는 생각에 하지 않는단다. “그동안 거절한 강연 요청이 3천회는 될 겁니다. 제가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하는 편이라 토요일과 일요일도 학교에 나와 글을 쓰거나 자료를 검토하죠.”

정민 교수가 최근 일본 와세대 대학 등에서 찾아낸 ‘조선차’ 논문을 모아 엮은 자료집이다.
정민 교수가 최근 일본 와세대 대학 등에서 찾아낸 ‘조선차’ 논문을 모아 엮은 자료집이다.
그는 자신이 질문을 바꾸는 학자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했다. “모두가 다산의 청렴과 애민 사상만 강조할 때 저는 다산이 18세기 정보 폭발 시대에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편집해 탁월한 성취를 했는지에 관심을 가졌죠. 떡차 이야기를 한 것도 제가 질문을 바꾸었기에 가능했죠.”

고전 애호는 고교 시절로 올라간단다. “고교 때 현대시와 한시를 많이 외웠어요. 그때 외운 ‘관동별곡’은 지금도 외워요. 대학 땐 시인이 되려고 습작을 많이 했어요. 어느 순간 창작보다 분석에 더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전문학 공부로 나아갔죠.” 한문 공부는? “대학 4학년 때 재야 한학자인 이기석 선생의 한문 특강을 들었어요. 제가 한문 실력이 있다고 생각해 이 선생님 앞에서 까불다 혼이 많이 났어요. 그 뒤로 7년 동안 그분의 ‘가방모찌’를 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문을 배웠어요. 제 박사 논문이 나오기 1년 전에 돌아가셨죠.”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시를 쓸 때부터 순문학적 시풍에 마음이 끌렸단다. 그는 1979년 한양대 국문학과에 들어가 모교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해 만 30살에 교수가 됐다. 20대 시절이 80년대 민중 담론이 폭발한 시기와 겹친다. “대학원을 다닐 때 한문학계의 지도급 학자들이 민중·계층 사관을 가진 분들이었어요. 한문학계에 가면 숨이 막혔죠. 그런데 당시 명동을 찾아 현대 중국어로 된 대륙 쪽 논문을 보니 두보나 왕유의 문학적 성취나 미학을 분석한 글들이 많더군요. 흥미를 느꼈죠. 그런 사유 방식을 우리 한시에 접목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 글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원로도 있었지만 젊은 연구자들은 참신하다고 반겼죠.” 그는 당시 자신의 모습을 두고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게릴라”란 표현을 썼다. “제가 (한문학계의 주류인) 성균관대나 고려대를 다녔다면 그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박사논문(<조선후기 고문론 연구>) 주제는 문장론이다. ”지도교수가 박사 논문을 조선 말 문신인 운양 김윤식(1835~1922)을 두고 쓰라고 하셨죠. 운양은 한일합방 조인문에 서명한 친일파여서 마뜩치 않았어요. 그래서 김윤식이란 인물을 피해 김윤식과 그 스승 그리고 스승의 스승을 묶어 기호 문장학의 계보를 파고 들었어요. 스승 때문에 더 넓게 공부한 셈이죠.”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책은 <한시미학산책>(1996년)이다. “사회주의 붕괴 뒤 대중들이 박노해의 시 대신 서정윤이나 도종환의 서정적 시에 빠져들었던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어요. 책이 나온 뒤 시인들의 팬레터를 많이 받았죠. 하하.”

최고로 치는 문장가와 가장 사랑하는 문장가는 동일인이라고 했다.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대학원생들에게 연암의 문장 다섯 편만 읽혀도 그다음 답이 ‘연암이 무섭다’입니다. 압도하죠. 그의 글은 지금 세대와도 교신이 가능해요.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티베트 형세를 논했는데, 지금 봐도 똑같아요. 연암 윗 세대인 이용휴란 분의 글은 사람 눈을 놀라게 하죠. 표현이 번쩍번쩍합니다. 하지만 가벼워요. 연암은 그렇지 않아요. 묵직합니다. <열하일기>는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도 간행됐죠. 압도적인 콘텐츠입니다.”

그의 글은 쉽게 읽힌다. 스토리텔링 기법에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친절하게 서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서술을 두고 대중적 글쓰기란 말도 나온다. ‘대중적’과 ‘학술적’은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정 교수는 단호하게 자신의 글쓰기는 학술적이라고 했다. “조너선 스펜서(예일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의 글쓰기에는 열광하면서 우리 안의 중간적 글쓰기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죠.”

그는 자신이 발로 뛰어 새로 발굴한 다산 자료를 다산 연구자들이 깊이 검토해주길 바란다면서 덧붙였다. “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찾은 다산 자료가 다산필첩 등 너무 많아요. 해방 이후 다산 논문이 5천 편인데 (제가 찾은 자료들은) 한 번도 손대지 않은 것들입니다. 내가 찾은 자료를 그 뒤로 다산학 연구자들이 많이 인용했어요. 그런데 내가 찾은 자료라는 걸 밝히지는 않더군요. 페어플레이가 아니죠.”

국문과에서 고전문학의 위상은? “고전문학 전공자는 거의 멸종 상태입니다. 지난주 대학원 면접을 했는데 15명 모두 현대문학 지망자였죠. 예전에는 한둘씩은 있었어요. 처음엔 올라가기 힘들지만 올라가면 가속도가 붙는 게 고전문학입니다. 현대문학은 쉬워 보이지만 경쟁이 심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