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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름다움이 우리를 정의로 이끈다

등록 2019-01-18 06:00수정 2019-01-18 19:56

창조 역행하는 폭력성 파헤친
‘고통받는 몸’의 작가 스캐리
창조성 회복하는 심미 예찬론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일레인 스캐리 지음, 이성민 옮김/도서출판b·1만2000원

밑줄을 긋다 긋다 유선 노트가 되는 책. 심미와 윤리, 대극적인 두 주제의 친연성을 재확인하고 싶다면 필독서로 들일 만하다. 이 책은 문학, 철학, 미술을 다채롭게 인용하며 아름다움의 후려쳐진 가치를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이 불의를 방관하기는커녕 이에 대처하는 능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아름다움이 정의의 연마제라는 이런 주장 자체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정작 새로운 점은, 몹시 낯선, 그러면서 찬란한 문장에 담겨진 아름다움의 속성들이다. 또한 아름다움을 푸대접하는 정치적 입장의 약점을 들추는 섬세한 눈이다.

지은이는 지난해 처음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고통받는 몸>의 작가 일레인 스캐리 미국 하버드대 교수(영문학). 폭력과 전쟁은 창조를 역행하는 파괴행위이며, 고통을 언어로 옮기는 용기가 결국 문명을 나아가게 한다는 주장으로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에서는 그 창조의 원천으로서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아름다움은 그 자신의 모사들을 존재케 한다. 그것을 그리도록, 사진 찍도록, 묘사하도록 만든다.” “생성은 중단 없다. (…) 아름다운 누군가를 볼 때, 몸 전체는 그 사람을 재생산하기를 원한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디오티마가 ‘낳기’라고 표현한바 “점점 더 많이 만들어서 결국은 충분한 것이 있게 하려는 의지”를 지은이는 아름다움의 본질로 본다. 고유의 “비교 불가능하고 전례 없음”의 감각이 “새로움, 새로 태어남의 감각을 운반”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아름다움과 진리가 합류하는 풍경을 본다. 아름다움은 ‘전례’를 탐색하도록 유도하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아무 전례도 없는 불멸의 영역, 진리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18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행진. 스캐리는 “평화는 힘이 평등하게 분할될 때만 최선으로 보장”된다고 한다.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움직이는 퍼레이드는 아름다움과 정의의 공조를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017년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18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의 행진. 스캐리는 “평화는 힘이 평등하게 분할될 때만 최선으로 보장”된다고 한다.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움직이는 퍼레이드는 아름다움과 정의의 공조를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은 날 수도 없고 땅에 내릴 수도 없는 도망 다니는 새처럼 우리에게 온다.” 수백년 동안 남성적인, 성스러운, 거대한 권력의 미학, 숭고함에 밀려난 아름다움의 신세를 표현한 말이다. 여성적인, 감각적인, 작은, 그래서 버려도 좋은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움은 숭고함의 ‘위력’으로 인해 형이상학의 하늘을 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현실에 발을 디딜 수도 없었다. 아름다움은 홀릴 만큼 강렬해서 정의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킨다는 정치적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름다움을 응시하는 행위가 대상을 파괴할 수 있다는 비판도 가세했다. 지은이는 이 두 비판이 상호 모순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름다움이 정의를 성취하는 힘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정의 그 자체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으며, 창조 행위와 독립해서 아무 실존도 갖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자연적일 수도 인공적일 수도 있다. 정의는 언제나 인공적이며, 따라서 창조하려는 소망을 우리 안에 유발하는 그 어떤 지각적 사건(아름다움)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는다. 아름다움은 반복적으로 우리의 창조력과 마주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불의 상황이 (…) 우리에게 창조하라고 요청할 때, 우리는 저 능력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지 안다.” 아름다움이 낳는 평등, “분배 압력”은 정교한 어원 연구로 한번 더 뒷받침된다. ‘아름다운 용모’와 ‘공정하다’는 뜻을 동시에 가리키는 영어 단어 ‘fair(ness)’는 독일어 동사 ‘fegen’(장식하다)과 연결되고, 이는 다시 ‘어울리다, 조약을 맺는다’(pact)는 뜻의 ‘fay’와 연결된다. ‘pact’는 동일 어근으로 ‘평화’를 의미하는 ‘pax, pacis’에서 왔다. 아름다움은 분배 관념과 평화를 함께 낳는다.

150여쪽으로 길지 않지만, 우뚝하고 현란한 사유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스캐리는 점프한 무용수처럼 독자를 자신의 차원으로 들어올려 높은 곳의 기쁨을 나눠준다. 아름다움이 가진 “분배의 관념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우리가 바로 “넘치는 증거”라면서. “온 천지가 꽃이야. 네가 여기 있었으면.”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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