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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역사를 움직인 네트워크들

등록 2019-02-22 06:00수정 2019-02-22 19:07

보수주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네트워크 이론에 기반 역사 해석
“위계조직들이 네트워크에 의해
파괴적인 도전에 처하는 과정”
광장과 타워-프리메이슨에서 페이스북까지, 네트워크와 권력의 역사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21세기북스·4만5000원

‘광장’과 ‘타워’는 두 가지 힘의 형태를 상징한다. 열린 공간인 광장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타워는 위에서 아래로 명령 계통이 이어지는 수직적 ‘위계조직’(hierarchy)을 뜻한다. 위계조직 역시 네트워크의 한 형태라고 보는 게 타당할 터다. 네트워크는 인류가 탄생한 이래 존재해 왔다. 수평적이냐 수직적이냐의 차이는 혼합 정도의 차이일 수 있다.

<광장과 타워>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는 보수주의 학자 니얼 퍼거슨(55)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의 책이다. 그는 “최소한 지리상의 발견과 종교개혁의 시대 이래로 역사상의 주요한 변화들이 본질적으로 기성의 위계조직들이 각종 네트워크에 의해 파괴적인 도전에 처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광장과 타워.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에 푸블리코 궁전의 만지아 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1세기북스 제공
광장과 타워.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 광장에 푸블리코 궁전의 만지아 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1세기북스 제공
하지만 책은 네트워크와 위계조직 간의 투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기보다 네트워크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때문에 ‘누구도 섬은 아니다’ ‘깃털 색깔이 같은 새들은 함께 모인다’ ‘약한 유대는 강력하다’ ‘빈익빈 부익부’ 등 네트워크 이론이 주는 7가지 의미를 짚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조지 워싱턴은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 21세기북스 제공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조지 워싱턴은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 21세기북스 제공
책에서 다루는 네트워크들은 이른바 ‘비밀결사’ 조직들로 불리는 것들이 많다. 1776년 독일 잉골슈타트 대학의 법학교수였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창설한 ‘일루미나트’와 중세 석공들의 조직에 뿌리를 두고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프리메이슨’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 등이 일루미나트 회원이었다. 지은이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네트워크가 프리메이슨이었다고 주장한다. 조지 워싱턴(1732~1799),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등이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 또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신들의 이른바 ‘원탁회의’(유치원)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가 가담한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들의 ‘학술문예좌담협회’(사도들)도 다룬다. 그렇다고 ‘음모론’을 편들지는 않는다. “네트워크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가진 주류의 역사 서술과 그 역할을 습관적으로 과장하는 음모 이론가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밖에도 역사에 영향을 끼친 네트워크로 블룸스버리 클럽, 로스차일드 가문, 서방의 비밀 정보를 소련에 넘긴 ‘케임브리지 5인회’,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 구글, 페이스북 등이 거론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토르첼로 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의 벽화는 위계조직의 질서를 잘 보여준다. 위계제는 고위 성직자의 지배라는 뜻의 ‘히에라르키아’에서 유래했다. 21세기북스 제공
이탈리아 베네치아 토르첼로 섬에 있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의 벽화는 위계조직의 질서를 잘 보여준다. 위계제는 고위 성직자의 지배라는 뜻의 ‘히에라르키아’에서 유래했다. 21세기북스 제공
지은이는 15세기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과 유럽에서 인쇄술이 도입된 이후 진행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혁명 때까지를 첫번째 네트워크 시대로 꼽는다. 두번째는 1970년대 시작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 소셜미디어 시대다. 그 사이 179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는 위계조직이 다시 통제력을 확보해 네트워크들을 폐쇄하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시대였다고 본다. “그 정점에 달한 시점은 바로 20세기 중반으로, 전체주의 체제와 총력전의 시대가 바로 그때였다.” 독일 나치가 대표적인 예다. “파시즘 또한 시작은 네트워크였으며, 특히 독일에서는 더욱 그랬다”. 나치의 민족사회주의는 하나의 ‘운동’이었으나, 성장하면서 갈수록 위계적 조직으로 변해갔다. 스탈린이 집권하던 소련도 위계조직의 정점을 찍는다. 페이스북의 사례가 흥미롭다. “세계를 더욱 개방되고 연결되도록 만드는 사회적 미션을 이루기 위해 생겨났다”는 이 회사의 사무실 벽면에 2008년 이후부터는 “대담하게 앞으로 전진! 자신감으로 충만하라! 세계에 충격을 던져라!”는 “전체주의 국가의 프로프간다들”이 울려퍼지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뒤처리를 위해 열린 빈 회의에서 군주들은 유럽을 커다란 케이크처럼 나누어 가졌지만 칼질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네트워크로부터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21세기북스 제공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뒤처리를 위해 열린 빈 회의에서 군주들은 유럽을 커다란 케이크처럼 나누어 가졌지만 칼질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네트워크로부터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21세기북스 제공
지은이는 물음을 던진다. ‘오늘날 네트워크가 위계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좋은 일인가?’ 평가는 부정적이다. 여러 네트워크들만으로 세상이 무리없이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하고 “이 세계에 모종의 위계적 질서를 강제해야 하며 거기에 정통성을 부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뒤처리를 위해 1814~1815년 열린 ‘빈 회의’를 통해 유럽의 5개 강국 체제가 성립돼 이후 유럽의 안정을 가져온 것처럼 새로운 5개 강국 체제 수립을 제안하는 데서 지은이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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