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지음/창비·1만8000원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軍籍)에 실리다니/ …/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자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 ….” 시의 제목은 ‘애절양’(哀絶陽)이다. 다산 정약용의 대표작인 이 시는 다산이 1803년 전남 강진현에서 귀양살이할 때 지은 것으로, 망인·아기 할 것 없이 식구 숫자에 따라 군포를 물게 되자 한 남정네가 세금의 가중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생식기를 잘랐다는 이야기다. 다산이 지은 이런 ‘사회시’는 2500여수에 달한다. <목민심서>와 거중기, 천주교 탄압과 신유사화(辛酉士禍).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았던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생애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전직 국회의원이자 한국고전번역원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한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지난 50년간 천착해온 ‘다산학’ 연구 논문과 기고문을 엮은 논집을 펴냈다. 책은 다산의 개인적인 삶에서부터 고차원적인 학문적 개념까지 다산학 연구의 전모를 담고 있다. 3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서 다산의 생애와 그가 살던 시대를 소개하고, 2부에서 조선 실학사상과 다산학의 연원과 의미에 대해, 3부에서는 대표 저작인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에 담긴 다산의 혁신적 철학을 이야기한다. 책을 따라 다산의 삶을 살피다 보면 여러 번 흠칫 놀라게 된다. 첫째로 다산의 기구한 삶에, 둘째로 그의 천재성과 성실함에, 셋째로 진보적 사상에 놀라게 된다. 다산은 정조의 총애로 동부승지까지 오를 예정이었으나, 천주교에 관계했단 이유로 18년간 귀양살이를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놀라운 생산력으로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로 실학을 집대성하고, 왕에게 죽은 뒤 유언으로 올리는 정책이란 뜻으로 ‘유표’(遺表)라 이름 붙인 개혁방안을 남겼다.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경세유표>의 서문이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낡은 조선을 학문적·정치적으로 새롭게 바꾸고자 한 ‘개혁가’ 다산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가 ‘다산다운 생각’으로 꼽은 것은 “상사가 명령한 바라도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가 된다면 마땅히 굽히지 아니하”는 것이며, 부당한 세금에 민란을 일으킨 백성을 무죄로 석방하며 “민중들의 저항권을 그대로 인정해준” 모습이었다. 저자는 책 제목을 ‘다산에게 배운다’라고 지은 이유를 “다산을 통해 썩고 부패한 세상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200년 전 조선이나 지금이나 다산이 꿈꿨던 세상은 아직 요원한 탓일 것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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