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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배와 피지배를 정당화하는 ‘요즘 리터러시’

등록 2020-04-10 06:01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따비·1만6000원

다매체 시대, 현대인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정보의 양은 점점 늘어가지만 필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분별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럴 때 강조되는 게 매체나 대상에서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리터러시(문해력)이다.

미디어 생태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리터러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리터러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응용언어학자 김성우가 ‘한국 사회의 리터러시’라는 주제로 함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에 담겼다. 대화체로 이루어져 술술 읽히지만 대화의 밀도는 높다. 리터러시에 담긴 자기 성찰, 소통, 관계성 등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리터러시는 시대에 따라 정의가 변화했다. 고대에는 ‘문학에 조예가 있는 학식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면 중세에는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다. 근대 이후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일컬었다. ‘문해력’, ‘문식성’, ‘말귀’ 등으로 흔히 번역하지만 최근엔 이곳저곳에서 ‘리터러시’라는 다소 낯선 외래어 그대로 쓰는 빈도도 늘고 있다.

두 지은이는 리터러시가 “글자와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을 읽는 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리터러시의 뜻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리터러시가 “인간의 사회를 서열화하고 지배와 피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 또는 누군가를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인터넷 댓글창에서 “너 난독증이냐” “문해력이 떨어진다” “지능이 떨어져서 예의가 없다” 등 문해력을 잣대로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말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특히 노인 혐오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인네들 유튜브 그만 보고 책 좀 읽어라”라는 표현에서 보듯 그들의 지적 능력을 비하하면서 혐오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지하여 자기 생각이 없으니 선동에 쉽게 넘어가고 공론장을 오염시키는 존재로 배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두 지은이는 리터러시를 문제 삼는 사람들의 리터러시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리터러시를 정의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권력이다. 이것이 리터러시라면 저것은 리터러시가 아닌 것이 돼버린다. 그 정의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것이다. 이때 리터러시는 이해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배척하고 배제하는 기준이 된다.

리터러시의 핵심 요소는 ‘상호성’이다. 예를 들어 “네가 말을 못 한다”, “네가 글을 못 읽는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계를 맺으려고 힘쓰는 것 자체가 상호적인 일이며 리터러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리터러시는 이분법이 아니라 스펙트럼이기에 문해력이 좋다거나 떨어진다는 식으로 단정할 수 없다. 넓은 리터러시 스펙트럼 안에서 나와 너의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두 사람은 설명한다.

엄기호는 “저 사람이 한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가를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 사람이 한 ‘말’뿐 아니라 그 말을 한 ‘저 사람’을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말과 글의 의미는 저 사람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성우는 리터러시 자원이 많다는 것은 “타인을 깔볼 자격”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 가는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능력”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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