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여자들: 여성 간의 생활·섹슈얼리티·친밀성
권사랑·서한나·이민경 지음/보슈·1만4800원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됐어요. 다시 한번 피리를 불어야겠군요.” (서한나)
대전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문화기획 그룹 ‘보슈’(BOSHU)가 첫 단행본을 냈다. 이 단체는 2014년 여성주의 잡지 <보슈>를 창간하고 비혼커뮤니티와 여성축구교실 등을 운영해왔다. <피리 부는 여자들>은 ‘보슈’ 공동대표 권사랑·서한나씨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탈코르셋>을 쓴 작가 이민경씨가 지은이로 참여했다. 비혼 여성, 레즈비언 등 여자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세 편의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세 사람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공통 경험이 있다. 2019년 8월 보슈에서 연 ‘부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뒤 글쓰기’ 행사에서 주최자와 강사로 만난 이들은 페미니즘을 알아가며 여성 공동체와 레즈비어니즘에 대한 생각을 나눴고, 책을 쓰기로 뜻을 모았다. 책 속에는 여성 간의 관계맺기뿐 아니라 오랜 세월 굳어진 여성 혐오와 성차별적 구조 속에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2030 여성들의 현실과 고민도 오롯이 담겨 있다.
그들은 독립출판 제작비를 모을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이용했다. 특히 20∼30대 여성들의 호응이 높았다. 목표액 300만원의 열배가 훨씬 넘는 3880만원의 돈이 모였고, 후원자는 1800명을 넘어섰다. ‘페미니스트 비혼 여성’의 서사를 세밀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나이와 경험이 비슷한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이다.
김나현, 34.8×27.3㎝_acrylic on canvas board_2020
책의 첫 번째 글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는 비혼을 선택한 권사랑씨가 다른 여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권씨가 주거 공동체에서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서한나씨가 쓴 ‘끝나지 않는 춤을 추고’는 레즈비언의 연애담이다. 여성과 여성 간에 생기는 성적인 긴장감과 강렬한 끌림을 솔직하게 그렸다.
이민경씨의 글 ‘긴 행렬을 부르는 그림’은 여성 간의 친밀성이라는 주제를 녹였다. 대학원생 때 인도에 같이 봉사를 간 사람들,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 팀원들, 탈코르셋 운동을 함께 한 동지들 등 자신이 만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소환한다. 동료들은 그에게 “가장 깊은 차원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세상과 연결됨을” 느끼게 한 사람들이자 “벼랑 끝에 달린 로프” 같은 존재였다. 그가 계속 여성에 대한 글을 쓰고 옮기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씨는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피리 부는 여자들>은 책이자, 세 여자가 다른 여자들을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며 “이 책을 읽은 여성들이 저마다 속에 가지고 있던 이야기들을 길게 풀어내며 또 다른 여자들을 소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