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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잘못 둘러대지 말고 잘못에서 배우라

등록 2006-01-12 18:33수정 2006-01-13 16:49

포퍼는 <추측과 논박>에서 과학의 진보는 “우리가 우리의 잘못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추측과 가설은 엄정한 검증과 반박을 통과해 살아 남아야만 과학에 이를 수 있다. 대폭발(빅뱅) 우주론은 1940년대 말에 우주의 태초에 일어났을 ‘뜨거운 대폭발’의 흔적이라며 예측한 ‘태초의 빛’ 우주배경복사가 1965년 우주 전파 신호로 관측됨에 따라 ‘과학’이 될 수 있었다. 사진은 우주배경복사를 전파망원경으로 실측한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 윌슨(왼쪽)과 펜지아스. 사진 www.theskyscrapers.org에서
포퍼는 <추측과 논박>에서 과학의 진보는 “우리가 우리의 잘못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추측과 가설은 엄정한 검증과 반박을 통과해 살아 남아야만 과학에 이를 수 있다. 대폭발(빅뱅) 우주론은 1940년대 말에 우주의 태초에 일어났을 ‘뜨거운 대폭발’의 흔적이라며 예측한 ‘태초의 빛’ 우주배경복사가 1965년 우주 전파 신호로 관측됨에 따라 ‘과학’이 될 수 있었다. 사진은 우주배경복사를 전파망원경으로 실측한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 윌슨(왼쪽)과 펜지아스. 사진 www.theskyscrapers.org에서
과학이론 옮음 증명하는 논리실증주의에 회의
“검증될 수 없어도 반증될 수 있다”
오류 가능성 의심 ‘반증주의 과학관’ 제시
사회도 역사도 잘못의 발견으로 진보
고전 다시읽기/칼 포퍼 <추측과 논박>

지식에 대한 존경심은 인간의 오랜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역사적으로 우대받는 지식의 내용이 달라지긴 했지만 우대받는 지식의 소유자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권력을 갖게 되었다. 근대 이후 과학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식으로 인정받으면서 과학자는 존경과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과학은 미신이나 이데올로기와 선명하게 구별된다고 믿는다. 물론 과학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기술의 원천이 되면서 과학의 육성은 국가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국가의 부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국가는 발 벗고 나서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과학자가 국부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과학자를 국민적 영웅으로 받드는 사회 풍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는가. 과학을 인간의 다른 행위와 구별해주는 과학의 고유한 특성이란 무엇인가. 과학자가 과학 활동을 할 때 지켜야 할 특별한 방법이 존재하는가. 이러한 것들은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물음들이다. 칼 포퍼의 학문적 문제 의식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였다.

포퍼는 1945년까지 무명철학자에 지나지 않았다. 190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30대 중반까지 그곳에서 공부하고 교사 생활을 하다 뉴질랜드로 망명가서 이름도 변변찮은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였다. 1945년 하이에크의 도움으로 런던 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하다 1994년에 작고하였다.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출간되면서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덩달아 그의 과학 철학과 인식론도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의 과학 철학은 영어권에 늦게 알려지게 되었다. 1934년에 독일어로 출간된 <탐구의 논리>가 <과학적 발견의 논리>라는 제목으로 1959년 영어로 번역되었다. 사회·역사 철학을 통해 과학 철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포퍼는 “과학 이론은 검증될 수 없어도 반증될 수 있다”는 반증주의 과학관을 제시함으로써 그 당시 과학 철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논리실증주의의 종언을 고하게 하였고, 과학 철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틀리고 네가 옳을 수 있다

포퍼의 주요한 저술 가운데 하나인 <추측과 반박>은 다른 저술들과 달리 그의 과학 철학과 사회·역사 철학의 주장들을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하나의 논리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포퍼의 일관된 철학 체계를 읽을 수 있다. 서론, 논문 20편, 부록으로 구성된 <추측과 논박>의 핵심 주장은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We can learn from our mistakes)”라는 것이다. 곧 포퍼는 “내가 잘못이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라는 이 테제를 통해 지식의 본성과 성장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잘못으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이 성장할 수 있고, 과학은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 특히 과학적 지식은 정당화되지 않은 추측,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잠정적 해결 즉 추측(conjectures)에 의해 성장한다. 이러한 추측은 비판 곧 엄정한 비판적 테스트를 포함하고 있는 의도된 반박(refutations)의 통제를 받는다. 우리가 제시한 추측에 대한 비판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추측은 이러한 테스트를 통과하고 살아남을 수는 있으나 결코 긍정적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은 한 이론이 참이라는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이유는 존재할 수 없다는 반증주의 과학관에서 나온 것이다. 반증주의 과학관에 따르면 과학의 합리성은 이론을 지지하는 경험적 증거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태도, 즉 그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경험적인 증거를 비판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찾아진다는 것이다. 과학은 확실성, 개연성, 신뢰성을 탐구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우리 반증주의자는 과학 이론을 확고한 것으로, 확실한 것으로, 개연적인 것으로 확립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의 오류 가능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론을 비판하고, 테스트하고, 우리가 범한 잘못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배우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행운이 따른다면 더 나은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포퍼는 말한다.

포퍼는 과학 방법론을 사회 철학과 정치 철학, 역사 철학의 영역에까지 확장하여 적용한다. 그는 사회 철학적 이념도 과학 방법론과 동일한 논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양자는 ‘추측과 논박’의 시행착오에 토대를 두고, 스스로의 잘못을 독단적으로 지키려 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진보한다. 과학이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진보하듯이 사회도 잘못을 수정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일 정치가가 그들의 잘못을 둘러대지 않고, 그들이 항상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잘못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하면, 과학의 방법을 정치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적 방법의 비결은 기꺼이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의 사상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포퍼도 처음에는 마르크스와 같이 철학이 세상을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마르크스와 같이 과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과학이 불가피하게 도래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혁명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르크스와 결별했다.

근본 혁명 꿈꾸지 않아 비판도

포퍼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는 있어도, 사회를 완전히 새롭게 변혁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 혁명은 불필요한 폭력과 고통을 초래하고 자유를 파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 합리적인 공공정책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행복은 개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이다”라고 말한다.

포퍼의 반증주의를 계승한 철학자도 많지만 그의 적들도 만만찮다. 가장 결정적인 비판은 실제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의 선봉에 토마스 쿤이 자리 잡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과 모순되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해서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그런 사실을 무시해버리거나 변칙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과학 혁명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 개종인가. 그렇다면 과학과 사이비과학 사이의 명확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의 진보,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신중섭/강원대 교수·철학
신중섭/강원대 교수·철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과학을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고, 과학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과학철학자들이 탐구해야 할 철학적 난제들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점진적 사회공학을 주장한 포퍼는 이성의 지위를 영국 공무원의 지위로 낮추었다고 비판하였다. 카는 기존의 근본 질서에 대해서 도전하지 않고서는 진보가 성취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가 20세기 과학 철학과 사회 철학에서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는 것을 의심하는 철학자는 없다.

서평자 추천 도서

추측과 논박 1·2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민음사 펴냄(2001)

(원서는 한 권이지만 두 권으로 분책돼 우리말로 번역됐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I·II1

칼 포퍼 지음, 이명현·이한구 옮김

민음사 펴냄(1982)

(포퍼를 널리 알린 책, 전체주의에 대한 체계적 비판. 긴 후주가 번역되지 않아 번역서로서 완결성이 떨어짐)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신중섭 지음

서광사 펴냄(1992)

(이 책을 통해 현대 과학철학의 전반적 흐름 속에서 포퍼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사회철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했다)

50자 서평

◇ 박경덕(32·공무원) “과학적 진리의 절대성이란 일종의 형용모순임을 보여주었다. 지식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추측과 논박일 뿐이다. 그 이상을 바라는 자에게는 화 있을진저.(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기억나는 한마디. ‘모든 음모론은 신이 있던 자리를 대치한 것에 불과하다.’)”

◇ 익명(인터넷서점 알라딘 마이리뷰에서)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한마디와 그 개념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것이 얼마나 방대한 내용과 고찰을 통해 나오게 됐는지 알게 해주었다.”

◇ 익명(〃) “반증을 통해 우리는 좀더 ‘옳음’으로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왜 이성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가’라는 것은 반증가능한 가설이 아니라 대전제인 그저 믿음일 뿐이다.”

▽ 다음주 이후 고전 <자성록>,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데카메론>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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