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교수(왼쪽)와 박한희 변호사는 2014년 5월 법률가와 정책연구자들의 연구모임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와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친구다. 2014년 5월, 법률가와 정책연구자들의 연구 모임인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법정책연구회)에서 처음 만난 뒤 교류하며 서로 경험을 넓혀왔다고 한다.
“나이요? 연배 차이야 워낙 나죠. 하하….”
김 교수의 웃음 뒤엔 ‘나이 차이가 많다고 친구가 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돼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은 요즘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고 30일엔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입법을 권고하기도 했다. 마침 작년 7월 김 교수가 낸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발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최근 1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출판사 창비의 최지수 편집자는 “근래 나온 사회과학서들 가운데 찾아보기 힘든 기록으로, 최단시간 최고 판매량이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를 기념해 바꾼 책(리커버) 표지에도 초판처럼 오리 그림이 포함돼있다. ‘미운 오리 새끼’의 우화를 상징하는 오리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차별금지법의 원칙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이뤄졌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표지 이미지. 창비 제공
김지혜(이하 김) 지난해 책을 내고 처음 <한겨레>와 인터뷰할 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왜 사람들이 많이 보실까 여전히 궁금한 게 해결이 안돼요. (웃음) 다만 그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크고 작은 독서 모임에서 교사, 청소년 등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면서 생각보다 차별에 관심이 많고 경험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박한희(이하 박) 차별이라고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나누어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선량한 사람들의 차별적 행동’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직접적 의도를 가진 차별만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데 독자들이 호기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나는 차별하지 않았는데 왜 차별했다고 하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차별에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했을 테고요. 정치인들이 항상 차별해놓고 하는 말이, ‘제가 의도적이지 않았습니다’ ‘상처줄 마음이 없었고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잖아요? 의도적이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답함을 가졌던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 국가인권위원회 설문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9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중요한 건 제정의 필요성에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거죠. 고용이나 교육이나 일반상점을 이용하는 공간에서 어떤 이유로든, 나든, 내 가족이든, 친구든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말이죠. 이 법이 어려운 점은 내가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위치에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정치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알겠는데, 본인 이해관계가 아니더라도 사회정의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헌법 정신에 따른다면 오히려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박 낯선 집단이 나타났을 때 이 사람이 우리 옆에 있구나, 느끼는 것만해도, 이런 변화만도 꽤 달라진 것이에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보통은 하리수씨처럼 연예인이거나 텔레비전 너머 특이한 사람, 딴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숙명여대 합격자처럼 학생이고, 변 하사처럼 군인이고, 회사원이고, 특이한 사람이 아니구나, 우리 옆에 있는 거구나 느끼며 보이게 된 것이 최근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어요.
김 긍정적인 측면이죠. 코로나 사태 계기로, 보건에서의 차별 이야기가 본격화했어요. 사실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에서 굉장히 오래 얘기했던 것인데요. 차별과 낙인이 보건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고, 내가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모두의 건강에 위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닥친 지금, 왜 차별하면 안되는 것인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숨기지 않고,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고 검사하고 치료받는 분위기여야 나와 공동체 전체가 안전하다는 인식이 생긴 거죠.
박 그것이 바로 ‘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측면이 있어요. 초창기에 3번, 31번 감염인 등 감염인 자체에 쏟아진 비난이 오히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었죠.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 이후 정부는 “혐오는 방역에 방해가 된다”고 한 바 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나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모두 성소수자 차별, 혐오가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고요. 사실 낙인과 혐오가 보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셰프 등 국제기구의 공통적인 철칙입니다. 감염인은 전파자가 아니라 그저 ‘감염된 사람’인 거예요. 병에 걸린 것이고,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전파자’ ‘슈퍼전파자’라는 이미지로, 병원균 취급을 받았던 거죠.
김 모두의 건강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농가를 괴롭히는 과수화상병을 치료제가 없다며 텔레비전 뉴스에서 ‘과수에이즈’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에이즈에 치료제가 없다는 건 사실이 아닌데, 이런 말이 오해와 공포를 불러일으키죠. 그래서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치아이브이(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생기지 않게 언론보도를 하라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습니다.
박 이제 코로나 감염인 정보공개지침도 바꿨죠. 인권단체들이 요구해서 계속 문제제기를 했거든요. 이전에는 누가 어느 가게에 다녀가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것까지 기록되고 공개 했어요. ‘이 사람은 집에만 있었네, 좋은 확진자네, 이 사람은 집이랑 회사만 다녔네 불쌍하게 사네’ 등등 평가를 하는 일이 많았던 거죠. 이제는 성별과 직장, 거주지를 공개하지 않고 다녀간 장소, 시간만 밝히도록 해서 이전과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김 이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더 알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안정적인 직장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염려가 많겠어요. 병으로 인한 차별도 금지해야 하는 것인데,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내가 병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도 구제받을 길이 더욱 손쉽게 열리는 것이죠.
박 코로나가 차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바꿨던 것 같아요. 국가인권위가 지난달에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는 응답이 91.1%로 나왔어요. 코로나를 계기로 동양인 혐오 차별 사건 등을 보며 드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김 감염병이 취약한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을 드러나게 만든 측면이 있어요. 여성 비정규직, 노동이 불안정한 사람들,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집이 너무 협소에서 집에 있기 어려운 사람 등 취약한 곳에서 감염되며 여러 현상들이 나타났죠.
박 어떤 분은 고시원에 사는 사람으로 확진자가 되었는데 화장실도 바깥에 있고,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분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화장실도 가고 방에 있으면 굶어 죽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비난받고 고발 당할까봐 불안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사회적인 대비와 대책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어제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코로나 종식 때까지 서울시는 무조건 집회 금지라는 원칙을 세웠지만 사실 집회하는 이들은 지금 가장 취약하게 내몰린 사람들입니다. 문중원 기수 유족들, 해고노동자, 철거민 등이에요. 이 분들은 나와서 얘기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습니다. 집회 시위 금지 방침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그보다 안전하게 집회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죠.
지난해 7월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펴낸 김지혜 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이 책은 최근 판매 10만부를 돌파했다. 김 교수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차별금지법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도 불평등 구조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예요. 비정규직인 상태에서는 미래를 예상하고 설계할 수가 없어요. 은행에 적금을 붓거나 어디서 어떻게 살지 결정하기 어렵죠.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할 수도 없구요. 조직 안에서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목소리를 내서 상황을 바꾸기도 힘듭니다.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민권이 없고 결코 오를 수 없는 신분제 사회 안에 놓이게 되는 거죠. 획득하면 신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 구조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으로 불평등 구조가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비정규직은 2류 시민이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만큼 공포인 것이죠. 출발이 늦으면 따라잡을 수도 없고, 누군가의 신분상승은 내 자리를 뺏기는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변 하사의 경우에도 커밍아웃을 했을 때 경쟁률이 낮은 남군으로 들어와서 티오가 극히 적은 여군이 된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 있었어요. 여군은 여군으로서 자부심이 있는 거죠. 이때는 왜 직군을 다르게 설계하는지, 왜 공정을 해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는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결국 기승전 차별금지법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김 ‘좋은’ 자리를 적게 만들수록 공정이라는 이슈는 해결되지 않아요. 이슈의 상당 부분은 구조적 불평등에서 오는 거예요. 대학 경쟁도 이와 연결되거든요. 대학 입학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되면 치열하게 공정을 요구하게 되는데, 사실은 학벌과 학력을 신분으로 만든 불평등 구조가 문제인거죠.
박 맞아요. 차별금지법에도 외국에도 없는 학벌, 학력 차별 금지 내용이 포함돼 있잖아요? 우리 국회는 매 임기마다 학력차별금지법을 발의해요. 차별금지법의 내용은 그 나라에서 무엇이 차별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 그런 점에서 노력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되지만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신분’화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인 것 같아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도 연구를 중요하게 강조했지만, 차별 연구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제는 과학기술과 금융, 경제, 경영 등 모든 부분에서 차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코로나 시대에 지금 가장 취약하게 내몰린 사람들이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 기업들이 이제 인공지능으로 면접하는 시대가 되었잖아요? 이 사람의 얼굴을 보고 공손한지, 화가 났는지, 일을 잘 할 사람인지, 아닌 사람인지 판단하는 거죠. 어떤 알고리즘을 적용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죠. 고위직 남성들의 얼굴과 표정을 기준으로 ‘이 사람은 고위직이 적합합니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죠.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양형을 결정할 때 인공지능(AI)을 사용합니다. 재범확률을 따져서 판결을 내리는데, 흑인의 재범률이 높다면 판결이 세게 나오는 식이죠. 악순환입니다. 이런 문제가 모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거예요.
김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논란이나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논란에서도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 같은 논의구조가 불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 다수가 남성이고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해결점은 남성 안의 가해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데 있어요. 남성이 같이 얘기해주고 싸워야 하는데, 그 동력이 잘 안 생기죠. 아동폭력이나 많은 사회이슈는 함께 공감하고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데, 여성폭력에는 남성이 불편해지는 지점이 있는 듯해요.
박 페미니스트랑 퀴어랑 싸운다며 구경하며 여성의 불안감을 만든 게 무엇인지 짚어지지 않은 데는 언론의 문제도 컸다고 봅니다. 자극적으로 찬반 대자보를 비교하면서 반대나 갈등을 부각시킨 거죠.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로 취준생 갈등으로 몰아가는 형국이었고요. 여성폭력에 공감한다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적은 건 성별이 교차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봐요.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를 입을 수도 있고, 아동은 누구나 어릴 때가 있었고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된다는 전제가 있지만 성별은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분리돼 있으니까요. 딴 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차별발언이 나오는 거예요.
김 남녀가 불법촬영에 모두 공분해야 하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왜 다른 세계처럼 느낄까, 동료시민이 겪는 문제로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너무 성별화하고 분리된 영역에서 생활한 까닭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어려서부터 남녀, 성별을 인식하지 않고 사는 날이 하루도 없게 만드는 구조, 분리 구조에 질문을 던져야겠죠.
박 그렇게 보면 교육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김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차별금지법’의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 지금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 청원(
petitions.assembly.go.kr)을 진행하고 있는데, 30일 안에 10만명이 동의 서명을 하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 해당 위원회로 청원이 회부돼요. 책을 산 사람들이 한표씩만 보태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7월7일 현재 국회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에 대한 청원’은 10만명이 동의해 종료했다. 이 청원 내용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조장하여 건강한 가정을 해체하며,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도덕을 파괴할뿐 아니라 헌법을 위반하여 신상과 양심,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다”고 적혀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에 관한 청원’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 내용엔 “여러 종교단체와 보수단체에서는 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며 법 내용 중 하나인 ‘성적 지향’ 항목이 반대의 주된 이유라고 밝혔다. 청원의 내용에 언급된 헌법 10조와 11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 돼있다. “차별금지법으로써 똑같이 납세의 의무를 가지고, 똑같이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사회만큼은 동등한 시선으로 국민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십시오.” 청원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