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안세홍(오른쪽) 작가. 글항아리 제공
런란어, 웨이사오란, 황유량, 김복득, 박차순, 하상숙, 이네스, 프란시스카, 카르민다, 파우스트, 라우린다, 루시아…. 낯선 이름의 이들은 한국,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다. 재일 사진가 안세홍씨는 지난
25년 동안 아시아 곳곳에서 만난 피해자 140여명 가운데 21명의 모습을 찍고 삶을 기록해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를 펴냈다. 안 작가는 2012년 일본 도쿄 신주쿠 니콘 살롱이 일방적으로 취소한 일본군 ‘위안부’ 사진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재판을 승소로 이끌기도 했다.
지은이가 이 피해자들의 모습과 진술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하던 1996년,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취재하면서부터였다. 2012년 3월에는 아시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기록과 지원사업인 ‘겹겹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안 작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변방에 이르기까지 피해 여성을 찾아 다녔다. 국제사회에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를 둘러싼 역사적 진실이 “한·일 사이의 문제만이 아닌 아시아 여러 나라에 걸친 전쟁과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93살의 바리 할머니는 여전히 “낯선 남자만 보면 무슨 일을 당할까 두렵”다. 90살의 루시아 할머니는 “항상 강간을 당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안 작가는 2016년 세상을 떠난 동티모르의 카르민다 할머니를 만났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안 작가는 “할머니를 만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예전 기억을 하지 못하셨지만 동생분이 언니를 대신해 위안소로 끌려간 이야기를
하던 중에 할머니가 갑자기 일본어 숫자를 말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어요. 그 당시 ‘할머니가 기억은 잊었지만 트라우마는 오래 남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의 제목이 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는 말은 안 작가가 할머니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많이 들은 진술이다. 그래서 책에서도 그는 ‘위안부’라는 용어 대신 ‘성노예 피해자’라는 말을 썼다. 안 작가가 만난 이들 가운데는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경우가 한명도 없었다. 그들은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길을 가다가 일본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한 뒤 위안소로 끌려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 시켜 주겠다”라는 거짓말에 속아 ‘위안부’가 됐다.
안 작가를 만난 피해자들은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인도네시아의 미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전수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조사가 되었더라도, 고령의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인 보살핌이 너무도 부족하다. “나는 일본군에게 강간당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나에게 사과해야 해요.” 피해자들의 외침만 메아리쳐 돌아올 뿐이다.
역사의 증언자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안 작가가 책에 담은 21명 중 8명이 세상을 떠났다. 한국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8명 중 생존자는 현재 17명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들의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다. 기억은 토막 나거나 생을 마감함으로써 사라진다. 그 전에 피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기록이 쌓여 역사가 되듯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기록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