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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더 많은 ‘아픈 몸’의 언어가 필요하다

등록 2020-08-07 04:59수정 2020-08-07 10:12

1995년생 지은이가 아픈 몸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
“건강한 몸만 정상 여기는 사회…난치의 균열 내고파”

난치의 상상력: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동녘·1만6000원

“아픈데 파악할 수 없는 몸. 항생제와 진통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로 버텨 내고 매일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나는 난치질환자다. 나는 만성질환자다. 나의 몸이 의학의 한계다.”

25살의 안희제씨는 6년 전 크론병 진단을 받았다.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소화기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염증은 통증을 불렀다. “바늘들이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마디에 꽂혔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하는 고통은 일상이 되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여러 곳으로 염증이 퍼져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다. 약해진 몸 때문에 놀다가도 쓰러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쓰러졌다. 무기력감과 우울감도 함께 그를 괴롭혔다.

<난치의 상상력>은 희귀 난치질환을 앓는 1995년생 안희제씨가 한국사회에서 겪은 차별과 혐오에 관한 기록이다. 평생 낫지 않는 질병을 안고 살지만 겉으로는 아파 보이지 않는, 장애인도 아니고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인의 시선으로 쓴 질병 서사이다.

‘아픈 청춘’인 그는 사회가 정해놓은 ‘건강한 남성의 얼굴을 한 청춘’에서 벗어나 있었다. 사회는 그의 질병을 그저 어쩔 수 없는 불행이나 온전히 치료의 대상으로만 봤다. 질병은 삶의 조건이 아닌 소외와 체념, 포기와 배제의 조건이 되었다. 어디서나 그는 경계인으로 산다.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는 그는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여겨지고 비장애인 옆에서는 ‘조금 더 장애인’으로 취급되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서 줄을 타는 것만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장애인 공동체에서는 나를 시혜적인 봉사 정신으로 무장한 열혈 비장애인으로 오해하곤 했고, 비장애인 공동체에서는 나를 어딘가 자꾸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여기곤 했다.”

동녘 제공
동녘 제공

아파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아픈 사람들만이 만드는 ‘환우 공동체’가 그것. 가족 중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종기 선배’다. 어머니는 그에게 어떤 약을 먹어야 하고, 엉덩이에 종기가 나면 앉거나 누울 때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조금 덜 아프며, 어느 시점에 수술을 받으러 가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수십 년 동안 겪은 온갖 종기가 남긴 지식이었다. 농양에서는 그가 어머니의 선배였다. 어머니가 수술 후 환부에 관을 삽입한 채 지내는 불편함이나 환부 세척을 위한 병원 방문 때의 고통 같은 것들을 토로하면 그가 경험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고통과 아픔을 이야기하며 나눌 때 아프지만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픈 이야기를 듣거나 하는 걸 꺼린다. 사람들이 아픔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는 다시 “통증, 한계, 괴로움, 죽음에 대한 문화적 침묵으로 이어져서 아픔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한다고. 아픈 사람들이 자신의 통증, 질병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 일은 그 두려움을 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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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의 상상력>의 지은이 안희제씨는 “질병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말했다. 김덕중 제공

결국 지은이가 말하고 싶은 건, 더 많은 ‘아픈 몸’들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곁에 있는 이의 ‘사소한’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고통의 경험을 나누는 예민한 사람들의 연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더욱 많은 아픈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와서, 건강한 몸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건강 중심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난치의 균열을 내길 바란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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