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대와 30대의 주식·부동산 투자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테크 책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한 20대 취업준비생이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주식 시세를 보고 있는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코로나19 시대, 여름 서점가는 ‘부자 되기 열풍’으로 뜨겁다. 돈을 버는 방법을 다룬 재테크·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8월 둘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1위 <부의 대이동>, 2위 <돈의 속성> 모두 ‘돈 책’이다. 같은 기간 예스24의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른 재테크 책은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2위) <돈의 속성>(6위) 등 4권이나 된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 에세이와 소설이 강세를 보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돈 책’의 주요 구매 독자층은 경제활동의 주축인 30~40대다. 교보문고의 8월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2주 연속 1위에 오른 <부의 대이동>의 연령별 구매층을 보면, 30대가 34.8%, 40대는 34.1%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남성 60.6%로 여성 39.4%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테크 책의 인기는 코로나 위기 상황 속에서 주식, 부동산 투자 광풍이 부는 현재 우리 사회 모습을 반영한다. 초저금리, 부동산 규제 강화 등으로 갈 곳 잃은 돈을 어떻게 굴리면 큰 수익을 낼까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 저변에는 ‘위기가 투자의 기회’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홍순철 북칼럼니스트는 “아이엠에프(IMF)나 경제 위기상황이 올 때마다 자기계발서나 재테크 책이 잘 팔렸다”며 “불안한 시기에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더 드러내며 돈을 벌 수 있는 책을 찾는다”고 말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와 ‘10억 만들기’가 유행할 당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등 재테크 책이 인기였다. 이때와 비교해 최근에는 유튜브 <신사임당>의 주언규 등 인기 재테크 유튜버들이 ‘돈 책’의 주요 저자가 된 게 달라진 점이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진 요즘, 그 가장 뜨거운 욕망을 읽을 수 있는 베스트셀러 3권 <부의 대이동> <더 해빙> <킵고잉>을 기자들이 읽어봤다. 이 책들의 장점과 한계를 두루 살펴본다.
최근 뒤늦게 투자에 눈을 뜬 ‘주린이’(주식+어린이) 등이 재테크 유튜브 방송을 보거나 재테크 입문서를 찾는다. 경제를 알아야 투자를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복잡다단한 금융시장의 흐름을 읽는 건 쉽지 않다. 이런 초보자들에게 ‘경제 읽어주는 남자’로 통하는 사람이 바로 경제전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_경제의 신과 함께>의 출연자이자 국제금융 전문가 오건영이다. 그가 쓴 <부의 대이동>은 7월 말 출간 3주 만에 6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다. 달러와 금의 흐름으로 읽는 미래 투자 전략이라는 부제를 단 책은 현재 돈이 계속 풀려나오는 상황에서 세계의 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등 돈의 흐름을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금과 달러의 특성을 살펴보고 앞으로 이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갈지, 이런 움직임 속에서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지, 어떤 관점에서 이들 자산을 바라보아야 할지 다룬다. 결국 달러와 금 투자를 위한 책이다.
지은이는 전문가이지만 젠체하지 않고 구어체로 환율, 통화정책, 금리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책의 1장에서는 환율의 정의, 인플레이션과 환율의 관계 등 기초지식부터 알려줘 첫 장부터 읽기 수월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제신문의 기사, 환율 추이 그래프 등 객관적 정보를 넣었다.
지은이는 “부동산, 주식시장보다 달러와 금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주식과 채권의 분산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금과 달러라는 자산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그러니 달러와 금 투자까지 생각하지 못한 이들은 이 책을 보면 새로운 투자 자극을 받을 테다. ‘위기 관리를 위해 또 다른 투자를 생각해야 하는구나’ ‘요즘 부자들 달러와 금 투자를 한다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라고. 하지만 금과 달러 투자로 인한 손실은 온전히 자신의 몫.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분산투자와 위험관리를 하는 능력을 키울 또 다른 재테크 공부를 해야 하는 굴레에 빠질 수도 있다.
<더 해빙>은 ‘대한민국 상위 0.01%가 찾는 행운의 여신’ 이서윤과의 대화를 전직 중앙일보 기자 홍주연이 기록한 책이다. 나이 마흔에 아버지를 떠나 보낸 홍주연은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진정한 부자로 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를 방법을 궁리하다 10년 전 취재차 만났던 이서윤을 떠올린다. 일곱 살, 사주·관상에 능했던 할머니로부터 ‘부와 행운을 주는 운명’으로 낙점된 뒤 명리학·사주·자미두수·점성학 등 동서양 운명학을 섭렵해 20대에 이미 ‘부자들의 구루’가 되었던 인물. 홍주연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메일을 보낸 끝에 10년 만에 이서윤과 이탈리아에서 재회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홍주연) “답은 해빙(Having)이죠.”(이서윤)
책은 ‘해빙’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두 사람이 나누는 선문답 같은 대화로 흘러간다. “해빙이란 무엇인가요?” “해빙은 돈을 쓰는 이 순간 ‘가지고 있음’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이에요. (…) 원하는 것과 교환할 만한 돈을 갖고 있다는 건 정말 좋은 느낌이죠.” 소비를 하면 돈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충만감을 느낄까. 이서윤은 이렇게 답한다. “전등 스위치를 켠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동안 소비할 때마다 ‘없음’의 스위치를 켠 셈이에요. 그 결과 부정적 감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 (…) 반면 해빙의 스위치를 켜자 그에 맞는 긍정적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거랍니다. (…)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어요. 그저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죠.” 간단히 말해 돈에 대한 감정을 ‘부정 에너지(불안·긴장)’에서 ‘긍정 에너지(감사·충만)’로 전환하면 돈을 내 쪽으로 당겨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 홍주연은 사적인 경험과 이서윤에 대해 신비감을 자아내는 묘사로 몰입도를 단숨에 끌어 올린다. 각 장마다 이서윤의 ‘운명 컨설팅’으로 재정 위기를 극복한 이들의 사례도 제시돼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어떤 것도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서윤의 주장을 받치기 위해 지은이가 양자물리학,
카를 융의 무의식 등을 끌어오지만 설명이 투박하고 깊이도 얕아서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세계적 구루’ ‘그가 나타나니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등 이서윤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도 독자에 따라 낯설고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모두가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 책이 있다면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 조금 위안이 된다. 심리치유서 얘기가 아니다. 요즘 경제경영 분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주언규(신사임당)의 <킵고잉 : 나는 월 천만 원을 벌기로 결심했다>는 저성장 시대에 마인드와 사고방식을 달리해 새 기회를 창출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흙수저론으로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마음을 달리 먹고 여러 번 시도하면 돈을 벌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거대한 부가 아닌 나와 가족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월 천만 원을 벌기 위해 현실을 보는 관점을 달리 하는 법, 쉽게 좌절하지 않는 법, 멘탈 지키는 법 같은 조언이 나온다. 자수성가한 젊은이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돈을 번 저자의 마인드와 사고방식을 엿보는 건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 책은 저자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을 토대로 말하는 자기서사라서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직장에 다니며 모은 4천여만원의 돈으로 여러 사업에 도전한 뒤 온라인쇼핑몰과 유튜버로 성공하게 된 과정을 책에 담았다. 그는 온라인 시장이야말로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기회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몇십년 후 초등학교 때부터 코딩을 배운 세대가 나타나 지금의 청년 세대를 꼰대라고 욕하며 “코딩도 모르는 것들이 인터넷에서 돈 벌었대”라고 비웃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나 도전하면 돈을 벌 수 있어’란 생각이 갖는 한계는 분명 있다. 독자들이 처한 각각의 어려움과 장벽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저자처럼 누군가는 이유 없이 운이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허윤희 기자, 최윤아 기자,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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