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클·1만5000원
“문을 연 지 2년밖에 안 됐는데도 이 주변에서 저희 ‘니은서점’이 가장 오래된 가게예요. 심지어 건너편 가게는 핫도그, 통닭, 덮밥, 피자집으로 네 번이나 바뀌었죠.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영세 자영업자의 실상을 서점을 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 ‘니은서점’에서 만난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노 교수는 사회학자이자 만 2년을 꽉 채운 자영업자다. 주중엔 대학 교수로 강단에 서고 주말엔 서점 주인으로 책방을 지킨다. 주 7일을 꽉 채우며 ‘투잡’을 뛰지만 벌이는 오히려 야금야금 준다. 서점이 개업 이래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 인건비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도 매달 100만원씩 손해가 나요. 하지만 서점이 주는 무형의 소득이 있기에 이를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사회학자는 동시대를 사는 이들을 기록하는 사람이고, 사회와의 접점이 사라지면 사회학은 고립되고 맙니다. 서점 덕분에 대학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어서는 결코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듣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 비용은 감당해야죠.”
노명우 교수는 니은서점의 ‘마스터 북텐더’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권하듯, 북텐더인 그도 손님 각자의 취향과 질문에 맞춰 책을 골라준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달콤한 주말과 다달이 100만원에 달하는 돈을 포기하며 노 교수가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부모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해서다. 2015년, 2016년 연이어 세상을 떠난 그의 부모는 배움은 짧았으나 책의 가치만큼은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었다. “어머니는 월부 책장수가 지나가면 늘 불러 세워 가격 제한 없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 하셨어요. 책을 고를 기회를 제게 주신 거죠. 그런 부모님을 보내드리고 남은 조의금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후세대에 그대로 물려주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책을 고를 수 있는 기회,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 그 자체를요.” 상대적으로 쉽고 보편적인 장학금 지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간과 자본이 투입되는 서점으로 부모의 뜻을 이어가기로 그가 마음먹은 이유다. 그는 ‘삼거리 노 씨네’로 불렸던 부모를 기리고자 성의 첫음절을 따 ‘니은서점’이라고 이름 짓고, 책방 가장 좋은 자리엔 활짝 웃는 부모의 사진을 뒀다.
책방으로 부모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건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니은서점의 일상은 ‘낭만’보단 ‘낙심’에 가까웠다. 그는 지난 2일 펴낸 책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통해 “비관과 낙관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갔다”던 지난 2년을 빼곡하게 담았다. “대학 안 사람들은 책 보는 게 일상이 된 사람들이라 저는 모두가 책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책을 ‘저어엉말’ 안 읽더라고요.”
노명우 교수가 자신이 운영하는 니은서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3㎡ 규모 이 서점에는 노 교수와 동료 ‘북텐더’ 3명이 추천하는 책 1000권이 진열돼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빵 권 데이’(단 한 권의 책도 팔지 못한 날을 그는 이렇게 부른다)라는 이름까지 붙일 정도로 책을 사는 사람은 ‘희귀종’이었다. 서점 양 옆과 맞은편에 공인중개소가 있는, ‘힙’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주택가 골목에 간판부터 외벽까지 온통 초록인 세련된 독립서점이 등장했어도 창문 너머 힐끗 볼 뿐 쉽게 들어오는 이가 없었다. 서점에 와서 마치 독립선언서 낭독하듯 “나는 책을 절대로 안 산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충분하다”는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이도, 포스트잇에 손수 쓴 추천사를 보고는 “이딴 거 쓸 시간에 책값이나 더 할인해주지”라고 비아냥대던 이도 있었다. 사회학자는 서점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지 않는가. 책은 정말 비싼가. 책은, 또 서점은 왜 존재해야 하나.
그 고민의 결과를 책에 담았다. ‘대학에 가려고 책을 읽었고, 취업하려고 책을 읽었고, 승진하려고 책을 읽었기에, 책 읽기는 쾌감의 감정과 결합한 행동이 아니라 인내, 절제, 끈질김, 참을성, 강제, 이런 단어와 결합된 행동이었다’고 한국인이 책을 멀리하는 이유를 진단하고, ‘책은 가성비에 대해 일괄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없는 상품’이기에 책값에 대한 평가는 상이할 수 있으나 책이야말로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어마무시한 가능성을 포함하는 미디어’이기에 책값이 결코 비싸다고 볼 수는 없다고 결론 짓는다. 더 싸고, 더 빠르게 책을 살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이 있음에도 굳이 동네책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독립서점에서) 손님은 단순히 상거래에 참여하고 있는 고객이 아니라 책더미 속에서 나만의 책을 찾아내는 발굴자’가 되며 ‘서점은 한 권의 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책 곁에 또 다른 책이 있는, 즉 책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온라인 서점과는 다르기에 존재 이유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적,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비주얼 콘텐츠와 달리 책은 이성적, 논리적으로 판단해야만 읽어나갈 수 있다”며 “이렇게 키운 이성적 판단력이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다루는 데 꼭 필요하기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이가 책을 가까이했으면 한다”고 했다.
노명우 교수는 서점 가장 좋은 자리에 세상을 떠난 부모의 사진과 어머니의 육필 편지를 진열했다. 그 아래에는 노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와 츠바이크의 책을 전시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니은서점의 앞날에는 앞으로도 ‘난관’이 적지 않다. 이제는 상수가 되어버린 코로나19 사태로 니은서점의 자랑이자 고마운 수입원인 ‘작가와의 북토크’가 멈췄고, 독립서점에 최저 수입을 보장하던 ‘난간’과 다름없던 도서정가제도 흔들린다. 책과 서점은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회적 합의가 부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인이자 사회학자인 그는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까.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 무엇보다 각자가 염두에 둔 책이 다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라는 단어에서 누구는 수험서를, 누구는 실용서나 철학서를 떠올리니 논의하는 데 한계가 있죠. ‘도서’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다시 정의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서점인으로서는, 정부가 독립서점의 사회·문화적 기능에 공감한다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과 가격 경쟁력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완전도서정가제(할인 없이 책을 정가로 판매하는 제도)를 펴달라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