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엮음/삼인·1만9000원
그들은 언제나 ‘언택트’였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후에도. 노숙인이 감염병 확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초기 우려와 달리, 감염 사례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건 그만큼 노숙인과 사회의 ‘접촉면’이 없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는 광장에서 생활하지만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노숙인의 ‘광장 속 고독’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가만히 있어도 범죄자로, 건강해도 병자”로 여겨져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으로 취급돼 온 이들은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인문학이란 단비를 만나 하나둘 존재를 피워낸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곳이다. 사회복지금 수급자·노숙인·재소자·전과자를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2005년 9월 개교했다. 왜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일까. “노숙인에게 당장 필요한 물적 조건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들이 빈곤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노숙인 자활의 궁극적 목표는 자존감 회복인데, 이걸 도와주는 게 인문학이다.”
지난해 2월 치러진 성프란시스대학 15기 입학식 모습. 이날 받은 장미꽃 한 송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고 책에 쓴 이도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평균 경쟁률은 2대1 정도. 면접을 거쳐 선발되면 25명 안팎의 동기들과 함께 1년에 걸쳐 문학·역사·철학·예술사·글쓰기 강의를 일주일에 3일, 과목당 2시간씩 듣게 된다. 전체 수업의 70%를 들어야 졸업할 수 있는데, 개교 이래 지난해까지 총 246명이 수료했다.
수업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햄릿> <유토피아> 같은 고전을 읽고 시, 산문, 독후감 등을 써내야 한다. 일반 대학생에게도 만만하지 않은 텍스트지만 “유서 한 통쯤 몸에 지니고 있거나, 자살 미수 2범은 되는” ‘스펙’을 지닌 이들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이해하고, 마음 밑바닥에 쌓아 두었던 말들을 부지런히 길어 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토해낸 글 가운데 수작 167편을 골라 이 책에 실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초등학교만 마친 이부터 6급 공무원을 지낸 이까지 교육받은 정도도 살아온 궤적도 다르지만 글에 공통적으로 묻어나는 건 지독한 자기혐오와 고립감이다.
“두 눈을 꼭 감고 거울 앞에 섰다. 실눈을 뜨고 살짝 보려다가 곧 다시 감고 만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럽고 추하지는 않을까. 온통 일그러진 모습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내 스스로를 볼 수 없게 만든다.”(서○미 ‘거울 앞에서’) “남들이 누운 주검이라면/ 나는 정사각형 관에/ 무릎을 꿇려/ 묻히거나 태워지고 싶다”(권일혁 ‘자살회상’) 평생 한뎃잠을 잤으면서도 무릎 꿇려 묻히고 싶다는 시구에서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읽힌다.
자기혐오로 세상으로 난 문을 닫아건 이들을 고립감이 옭아맨다. “내가 성프란시스대학에 온 것이 무엇을 배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그리워서 왔다고 한 게 정답이겠지요. 더 이상 혼자 있다간 벙어리가 될 것 같았어요. 근 2년 동안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했어요.”(고 전태선 ‘내 이야기 들어볼래요?’) “반가운 마음에 덥석 잡았다/ 자세히 보니 ○○세무서/ (…) / 덕분에 나도 아직 대한민국 사람인 걸 알게 되는구나/ 막걸리가 살짝 달달해졌다”(이경로 ‘편지’). 주민세 독촉장에서 온기를 느낄 만큼 소속감을 애타게 갈구했음이 느껴진다.
그렇게 바스라지던 이들을 인문학이 적신다. 문학·예술 작품을 통해 자신의 현 상황을 직시하도록 돕고, 배움의 길에 동행할 벗을 ‘심어’ 민들레 꽃씨처럼 쓸쓸히 나부끼던 이들에게 ‘화단’을 선물한다. “그렇게 실눈이라도 뜨려 애쓸 때, 예술사 수업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자화상들. 그 우연한 만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두 눈을 크게 똑바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음을 안다. 바로 볼 수 있어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서○미) “강화도에 갔던 날, 그 불편함과 뒤섞인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소풍을 떠나는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 (…) 나를 덜 미워하고, 사람들을 덜 분리하고, 이런 거 생각이나 해보고 살았던가.”(김연설 ‘고상한 삶’) “수많은 칼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 / 하나같이 날이 빠지고 녹슨 모습/ 칼날엔 슬픔과 증오가 교차하고/ 지나온 시간의 고됨과 아픔이 베어 있다/ (…) / 증오와 슬픔의 눈빛은/ 어느새 온화한 눈빛으로 활기차 있고/ 자신의 쓰임을 다하기 위해 갈고닦기를 시작했다”(박은철 ‘칼’). 저녁을 제공한다는 말에 혹해 입학한 이도 나올 땐 사람에 대한 굶주림을 채워 나온다. 학기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벗을 추모하며 한 수강생은 이렇게 썼다. “나는 약했지만 형이 있어 강했어요.”
인문학을 통과한 이들은 사회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받은 노숙인이라는 이름을 거부한다. “인문학을 배우면서 희망과 삶을 배우는 우리에게 노숙자라는 단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활인’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다.”
노숙인 당사자의 발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단지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지하철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해도 누구 하나 대신 신고해주지 않고, 경찰서에 가면 일단 가해자 취급부터 당한다. 불심검문은 일상이다. 피시(PC)방에서 하루 다섯번 불심검문 받아도 “소녀시대도 다섯번 보면 싫다”고 농담 섞어 핀잔을 줄 뿐 제대로 항의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성프란시스대학은 이들에게 더 귀하다. “더럽고 냄새나고 이빨도 없어 발음이 줄줄 새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들을 신앙고백 들어주듯” 들어주기 때문이다.(김대영 ‘깨지지 않는 거울’)
1년 동안 인문학을 머금은 이들은 마침내 소망의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의 이름은 임대주택이다. “아껴서 저축해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게 내 소망이다.” 책 곳곳에 맺힌 작은 열매가 유독 탐스럽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