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소준철 지음/푸른숲·1만6000원
폐지 줍는 노인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더는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을 다룬 기사 밑에는 험한 소리가 적지 않게 달리는데,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업자득’이다. 저들의 빈곤은 대책 없이 살았던 젊은 날의 결과이자 자식 농사에 실패한 대가이며, 도로 한 차선을 차지하고 리어카를 끌 정도로 최소한의 교통법규도 지키지 않는 몰염치에 대한 ‘응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도시연구자 소준철은 그 답을 찾기 위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총 60여명의 폐지 줍는 노인을 만났다. 그러고선 이들의 삶에서 겹치는 경험 혹은 선택을 도출해 45년생 윤영자라는 가상 인물의 생애를 빚어냈다. 마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처럼, 윤영자는 그 시절 가장 대중적인 이름으로 불렸고 가장 보편적인 생애주기를 거쳤다. “젊은 시절에 자녀들의 진학과 생계를 위해,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들에 대한 지원과 남편의 투병으로 인해 열심히 벌었던 돈을 또 잃었다. 더구나 조사과정에서 만난 여러 여성들은 자녀들에게 돈을 ‘밀어주다’ 가진 집을 팔았고, 이로 인해 전셋집으로 이사했으며, (…) 남편이 투병 생활을 시작했고, 자신이 운영하는 장사가 어려워지자 재활용품을 줍기 시작한 여성도 있었다. (…) 이런 삶은 ‘징허게’ 반복됐다.” 지은이가 폐지 줍는 노인의 생의 경로를 추적한 결과, 이들의 빈곤은 ‘노오력’ 부족 탓이 아니었다. 남편 내조와 자녀 양육을 생애 목표로 삼게 하고, 교육받고 직업을 가질 기회도 박탈한 한국사회가 만든 결과물이었고, 한국전쟁·외환위기·국제금융위기 같은 역사적 사건의 파편을 맞은 대가였다.
공중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 리어카를 도둑맞는 일이 다반사라 매번 집에 가서 용변을 해결한다는 것, 새벽녘 인터뷰를 위해 말을 거는 지은이에게 플라스틱병을 던지고 소리를 꽥 지를 정도로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며 일한다는 것,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일해도 하루 만원을 벌기가 어렵다는 것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로 빼곡한 책이다. 책에서 땀 냄새가 훅 끼칠 정도로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점은 큰 미덕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