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은행나무·1만4000원
땅속에 묻힌 진실이 드러났다. 미국 플로리다주 니클 감화원의 ‘비밀 묘지’가 발견됐다. 시신 43구와 함께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두개골, 대형 탄환이 잔뜩 박힌 갈비뼈, 부러진 손목뼈가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장편소설 <니클의 소년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됐다. ‘2020년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리아나의 도지어 남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한 짐 크로 법(1876~1962)이 존재했던 1960년대 과거와 2010년 현재를 오가며 미국 사회 인종차별과 폭력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노예제도가 있었던 180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쓴 전작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2017년 퓰리처상 수상작)의 ‘그 이후 이야기’로 읽힌다.
소설은 흑인 소년 엘우드 커티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똑똑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듣는 엘우드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 차를 얻어 탄다. 훔친 차량이었다. 그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동차 절도죄라는 누명을 쓰고 소년원인 니클에 보내진다. 1899년 문을 연 니클은 “어린 범법자들”을 특별 교육해 “훌륭한 시민의 품성과 목적의식을 지니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감화원”이다. 하지만 범법자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 엘우드처럼 죄없이 들어온 이들, 부모가 없는 이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이곳에 왔다. 니클은 백인 소년과 흑인 소년이 지내는 공간을 분리한다. 인종에 따라 대우도 달라진다. 흑인들은 백인들이 입는 옷보다 낡고 해어진 것을 받고 비위생적인 기숙사에서 지낸다.
대학에 들어갈 부푼 꿈을 꾸던 엘우드는 니클에서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썩은 달걀 냄새가 나는 물로 목욕하고 소년 60명과 비좁은 방에서 자는 날들이 이어진다.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교육을 받고 하루걸러 한 번씩 고된 노동도 한다. 벽돌을 굽고, 콘크리트를 깔고, 풀밭을 관리하는 일을 소년들이 해야 한다.
니클에는 ‘화이트하우스’라는 체벌의 공간이 있다. 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말썽을 피우는 학생들은 이곳으로 간다. 심한 매질을 당해 영영 이곳에서 나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엘우드는 싸움을 말리다 이곳에 처음 끌려간다. 가죽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맞는다. 치욕적인 말도 듣는다. “거기 난간 붙잡고 놓지 마. 소리를 내면 더 맞는다. 그 주둥이 닥쳐, 깜둥이.”
니클은 온갖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다. 학교 관리자들은 주 정부가 지원한 흑인 학생들의 보급품을 빼돌려 다른 곳에 판다. 엘우드는 지역봉사활동 일원으로 차출돼 이 광경을 목격한다. 니클 밖으로 나가서 하는 일이 보급품을 사는 이들과 접선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그들에게 왜 치약이 지급되지 않았는지’를 알게 된다. 몇십 년마다 학교 횡령 사건이나 학대 사건이 신문에 나와 주 정부가 조사에 나서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니클은 세금 규정에서부터 건축 규정과 주차위반 딱지에 이르기까지 플로리다 주 정부의 모든 인쇄물을 찍어냈다.
니클에서 “정의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인 권투대회도 승부조작으로 얼룩진다. 유색인종 대표로 나간 그리프는 스펜서 선생에게 져주라는 주문을 받는다. 이 대회에 사람들은 돈을 걸고 내기를 한다. 하지만 그리프가 이긴다. 당당하게 실력으로 이긴 그는 어딘가로 끌려간 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니클에서 나간 소년들의 삶도 비참했다. 학교 직원 하퍼가 그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졸업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학교에서 학생을 시내의 사람들에게 사실상 팔아넘기면 거기서 가석방 상태로 보냈지. 노예처럼 일하고 지하실 같은 데서 잤어. 수시로 얻어맞고 발길질을 당하면서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고.”
엘우드는 니클에 갇혔어도 비관하지 않았다. 흑인해방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전한 굽힘 없는 의지와 희망, 사랑의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 때마다 그의 연설을 되새겼다. “우리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매일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빛뿐이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증오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소설에는 엘우드가 니클에서 만난 잭 터너도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의 우정과 연대는 또 하나의 주요 서사다. 엘우드는 세상을 비관적 시선으로 보는 터너를 변하게 했다. 터너는 점점 “엘우드의 훌륭한 도덕적 책임감,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그 훌륭한 생각, 세상이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에 끌린다.
둘은 악행의 소굴인 니클을 없애기 위해 힘을 모은다. 플로리다 주 정부 감사관들이 학교에 오는 날,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 니클에서 일어난 폭력, 비리 등을 고발하는 편지를 그들에게 전하는 것. 엘우드는 편지를 쓰고 터너는 감사관에게 전한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을까.
50년 뒤, 살아남은 니클의 소년들은 노인이 되어 만난다. 동창회를 꾸려 니클의 만행을 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선다. 수십 년 전 어두운 기억을 하나둘 꺼낸다. ‘네가 겪은 일이라면 다른 사람도 겪었을 거야. 넌 혼자가 아니야’ 라는 믿음을 갖고서.
반면 니클의 관리인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학교 관리인 얼은 은퇴한 뒤 시 정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훌륭한 시민상’을 받았다. 니클의 비밀 묘지가 세상에 알려진 뒤 기자는 그에게 묻는다. “끈으로 아이들을 30~40대씩 때린 적이 있습니까?” 그는 “전부 거짓”이라고 발뺌할 뿐이다.
소설은 ‘미국판 형제복지원’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인권유린의 참상, 약자의 존엄을 짓밟은 힘 있는 자들, 처벌을 받지 않는 가해자들, 폭력을 방조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닮았다. 이런 폭력의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는 <니클의 소년들>은 어둠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를 향해 나아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콜슨 화이트헤드 작가. ⓒChris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