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엔딩
김려령·배미주·이현·김중미·손원평·구병모·이희영·백온유 지음/창비·1만3000원
<아몬드> <페인트> <우아한 거짓말> 등 베스트셀러의 ‘스핀오프’(외전) 소설집 <두 번째 엔딩>이 나왔다. 스핀오프는 인기 작품에서 파생한 새 작품을 뜻한다. 김려령, 배미주, 이희영, 손원평 등 작가 8명이 쓴 소설의 스핀오프인 단편 8편을 묶었다. 이 소설집은 2007년 5월에 출간된 이현 작가의 <우리들의 스캔들>을 시작으로 이어진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 100번째 책이다.
<두 번째 엔딩>은 이야기의 성장을 보여준다. 그동안 사랑받은 청소년소설 <우아한 거짓말> <모두 깜언> <버드 스트라이크> <유원> 등 원작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다른 빛깔의 단편으로 태어났다. 원작에서 깊이 다루지 않은 조연이나 스쳐 간 인물을 중심에 세우며 다른 세계를 조명한다. ‘나는 농부 김광수다’(김중미)에서는 강화도 농촌에서 청년 농부로 살아가는 광수의 우직한 꿈을 보여주고 ‘서브’(백온유)에서는 폭력과 성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축구 선수를 그만둔 십대 자매의 생채기를 드러낸다. ‘초원조의 아이에게’(구병모)는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환대와 연대를 이야기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려령 작가, 배미주 작가, 이현 작가, 김중미 작가, 백온유 작가, 이희영 작가, 구병모 작가, 손원평 작가.
그중 손원평 작가의 단편 ‘상자 속의 남자’는 <아몬드>의 외전이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 가족의 갑작스러운 사고를 본 목격자 중 한 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택배 기사로 일하는 그 남자는 그날 벌어진 그 사고를 잊지 못한다. “도와주세요, 라던 절박한 외침. 내 발 위로 쌓여 가던 눈. 그리고 피로 붉게 물든 문 뒤에 서 있던 소년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날 그는 방관자였다. 얼어붙은 채 가만히 사고를 지켜봤다. 그와 달리 그의 형은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하다 다쳐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다. 다른 선택을 한 형제. 그는 형에게 묻는다. “만약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거야?” 형은 대답한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만약이란 건 없어. (…)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어떻게 하든 누군가는 아프게 되고 누군가는 기쁘게 되는 거야.”
남자는 어느 날 우연히 형이 살린 아이가 남을 돕는 ‘선의의 현장’을 목격한다. 그 아이의 몸에는 사고 때 생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의 형이 아이에게 불어넣은 생명의 흔적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멀리 뻗지는 못한다 해도 주먹 쥔 손을 펴서 누군가와 악수를 나눌 용기”를 품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남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김려령 작가의 단편 ‘언니의 무게’는 학교 내 왕따 문제를 다룬 <우아한 거짓말>의 그 후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지의 언니 만지와 엄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간이 흘러 천지는 청소년 자살률 통계로만 남았다. 만지와 엄마에게는 “영원히 아픈 현실이 다른 이에게는 통계상에 나타나는 수치일 뿐”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의젓했던 천지 몫까지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만지. 엄마는 그런 만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몫만 하면 돼. 자기 몫만 하고 사는 것도 힘들어. 마음은 기특하고 예쁜데, 너는 너로만 살아. 엄마는 그랬으면 좋겠어.”
만지는 동생을 지키지 못한 언니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아버지 장례식 때 펑펑 우는 천지를 보고 할머니가 한 말을 기억한다. “이제부터는 니가 천지를 잘 보살펴야 한다”고.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동생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방관한 지난날이 떠올랐다.
원작에서 천지를 죽음으로 몬 화연은 이번에 자신이 왕따가 된다. 폭력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만지는 그런 화연을 보듬는다. “힘들지? 그래도 이겨 내라, 꼭.” 다시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는 다정한 말을 건넨 것이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국가에서 키우는 엔시(NC)센터의 이야기 <페인트>의 외전도 만날 수 있다. 이희영 작가의 ‘모니터’. 전작에선 엔시센터에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외전에선 센터의 직원인 가디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세운다. 센터에서 나와 진짜 가족들을 만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여준다. 원작 제목인 ‘페인트’가 아이들 부모를 면접한다는 뜻이었다면 ‘모니터’는 가디들이 센터에서 나간 아이들의 삶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소설에서는 엔시센터 출신이라는 낙인을 안고 사는, 성인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차별에 굴하지 않고 그들은 꿋꿋이 삶을 꾸려간다. ‘아키 505’라고 불렸던 이로운은 엔시 출신이라고 밝히고 차별에 맞선다. “저를 괴롭히는 존재가 누군지 아세요? NC 출신이라고 수군거리는 애들이 아니에요. 바로 저 자신이었어요. 스스로 소중한 과거를 지워 버리려 했으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뭐라 비웃든, 적어도 저만큼은 저를 인정해 줘야 하잖아요.”
이희영 작가는 24일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처음 외전을 쓰면서 <페인트>의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 같았다”며 “독자에게 여러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그들을 두루 아는 엔시센터장 박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페인트>를 읽은 분들은 그 소설의 연장선에서 보고 원작을 읽지 않은 분들은 새로운 단편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라고 덧붙였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