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주류경제학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장진영 옮김/안타레스·1만8000원
“경제학자와 정치 철학자의 사상은 옳건 그르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 어떤 지적 영향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실무가들도 오래전에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자신의 대표작에 남긴 유명한 문구다. 그래서일까. 세상을 뒤흔든 경제위기의 충격파가 조금 잦아들 즈음이면, 이른바 학계의 ‘대가’들은 으레 교과서를 다시 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기 3부작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은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도 같은 길을 갔다. 팔순을 넘긴 원로학자를 경제학 교과서 다시 쓰기 행보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지은이가 정면으로 겨냥한 대상은 ‘주류 경제학’, 신고전학파 경제학이다. “나는 경제학의 언어를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로 말할 수 있다.” 역사학과 정치학을 경제학에 접목시킨 지은이는 주류 경제학의 한계를 차근차근 끄집어낸다. 균형에 대한 강박관념과 수학모형을 향한 무한 신뢰가 주류 경제학의 밑돌이라면, “사회가 생략되고” 역사가 사라진 건 불안정한 건축물이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이상적 교과서의 얼개는 “인류를 빈곤에서 구원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옹호할 수 있는 경제학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문장에 압축돼 있다. 이 책보다 한 해 전 나온 <화폐와 정부>가 전문연구자용이라면, 이 책은 대중 독자를 염두에 뒀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러다보니 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건 숨길 수 없다. “경제학이라는 건물의 1층에 윤리학을 다시 입주시켜야 한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날선 공격을 슬그머니 윤리의 문제로 끝맺음하는 건 조금 아쉽다.
최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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